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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2> 소설 "별들의 고향"의 오경아,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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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2> 소설 "별들의 고향"의 오경아, 1974년

입력
200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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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향수와 정액 냄새 풀풀 나는 이 시대에,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문오라는 사람입니다. 1940년생이니까 올해 벌써 예순 넷이네요.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몇 해 전 정년 퇴직 한, 반백의 노인입니다. 불쑥 얘기를 꺼내기는 뭣 하지만 제가 알던 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31년 전 스물 여섯 꽃 다운 나이에 죽은, 한때는 미친 듯이 보고 싶었으나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여인, 경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제가 경아와 동거한 것은 1969년 가을부터 70년 봄까지였습니다. 제대를 하고 막 서울로 올라온 그때는 조간신문 한부에 10원, 목도장 하나에 30원, 그리고 하루 여관비가 500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맥주집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맥주집은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약간의 아가씨들을 모아 술을 파는 그런 곳이었죠. 혼자 술 마시기가 멋쩍어서 술을 날라주는 '당번 아가씨'(그때는 그렇게 불렀습니다)를 불러달라고 해서 만난 아가씨가 바로 경아였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스물 한 살 나이에 키는 155㎝, 몸무게는 44㎏ 정도 될까요. 어깨 뒤에는 남보다 큰 점이 하나 있었고, 팔뚝에는 조그마한 청색 잉크로 그려진 하트 문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휘파람을 아주 잘 불었죠. 시간만 나면 맥주병 주둥이에 입김을 세게 내뿜어 '부―웅' 하는 소리를 내곤 했습니다. 휘파람이기보다는 먼 항구의 뱃고동 소리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73년 겨울 죽은 겁니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서울 미아리 언덕길 눈 쌓인 골목에서 숨진 채 발견됐죠. 어렸을 적 줄곧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다니며 밝고 건강한 삶을 꿈 꾸던 그녀가 말입니다. "제가 결혼하면 가계부도 쓰고, 레이스 달린 행주치마도 입고, 총채(먼지털이)로 구석구석 방의 먼지도 털면서, 여성잡지 부록에 실린 수백 가지 요리를 하며 살고 싶다"던 그녀였습니다.

경아는 제가 첫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2년 전, 무역회사에서 주판알을 튕기며 경리 일을 보던 그녀는 동료 강영석에게서 순결을 빼앗겼습니다. 사랑을 가장한 남자의 욕정이었죠. 그녀는 임신을 했고 중절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강영석은 물론 꽁무니를 뺐죠. 이후 만난 이만준 이동혁 모두 같은 놈들이었습니다. 저까지도. 그녀를 끝까지 지켜준 것은 결국 몇 잔의 쓰디쓴 술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경아에게 술을 먹였고, 차디찬 눈밭 위에서 죽게 만들었습니까. "별은 멀리 있으니까 예쁜 것이고, 내 고향은 별처럼 멀다"던 그녀가 술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첫 사랑 잘못 만난 탓이라고요? 모진 놈까지 만나 인생 망친 것이라고요?

고백하겠습니다. 경아를 죽인 건 바로 접니다. 당시 살길 막막한 내 자신의 초조와 절망감과 억눌린 성욕을, 길거리에서 만난 만만하고 순진한 그녀에게 배설한 제가 죽였습니다. 아니, 술에 취해 무책임하게 도심 골목 골목마다 방뇨한 우리 사내들 모두가 죽였습니다. 이동혁이 제게 들려줬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네온사인과, 그 밑을 불나방처럼 돌아다니며 하녀 같은 요정을 찾는 모든 사내들이 공범입니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는 힙합과 MP3와 건강음료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그 놈의 유신이라는 것에 숨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한 TV에서 '긴급조치 4호 설명회'와 '유쾌한 청백전'을 잇따라 시청하는, 우스꽝스러운 여가를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가수 한대수가 더 이상 '물 좀 주소'라고 소리칠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이만준이 경아에게 준 '크리스찬 디오르'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고,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30년 전보다 더 영악해지고 대담하게 그 명품 핸드백을 사기위해 서울 강남의 지하 룸살롱에서 남자들과 술과 인생을 마시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만준은 새로 만난 애인의 과거를 의심하고, 강영석과 이동혁은 새 여자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아 역시 어디선가 술에 취한 채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을 겁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오경아

1947년 3월8일 오전7시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태어났다. 단신 월남한 아버지는 기차역 인부로 일했고, 양조장 집 셋째 딸인 어머니와 결혼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 영등포 근처의 셋방으로 이사 와, 잘 살지는 못했지만 단란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3때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면서 불행이 찾아왔다. 어렵게 진학했던 대학(성악과)도 그만뒀다. 1968년 처음 취직한 무역회사에서 여섯살 위인 강영석을 만나 첫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그는 떠나버렸고 경아는 낙태수술로 석녀(石女)가 됐다. 69년 17세 연상인 홀아비 이만준을 만나 잠시 결혼의 단꿈을 맛보기도 했으나, 자신의 과거와 이만준의 결벽증으로 또 홀로 됐다. 눈만 뜨면 술을 마셨고 핸드백에는 언제나 신경안정제가 들어있었다. 72년 12월31일 추하고 비대해진 술집 작부의 모습으로 마지막 남자 김문오와 미아리 단칸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1년 후 겨울,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눈 쌓인 골목길에서 숨졌다. 그녀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 작가 최인호가 경아에게 보내는 편지

경아에게.

난 요즘도 가끔씩 원고지에 당신 이름을 크게 써본다. 지금 살아있으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이건만 당신은 내게 여전히 스물 여섯이다. 만약 요즘 젊은 사람이 당신을 부른다고 해도, 당신은 누님이 아니라 그냥 경아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제임스 딘처럼 영원한, 내 젊은 날의 분신과도 같은 경아….

30여년 전 당신 이야기를 쓰려 했을 때 난 목표가 있었다. '죄와 벌'의 쏘냐, '부활'의 카추샤, 토마스 하디 소설의 테스처럼 주인공 이름이 기억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한번쯤 깃들었다 스러지는 요정 같은 여인을 그리고 싶었다. 살아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가는 서울을 그리고 싶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한 유신 독재시대에, 밤 11시30분이면 통행금지를 피하려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택시합승을 해야 하는 풍속을 그리고 싶었다. 도시 산업화가 막 시작된 때에 청바지를 입은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술 취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비틀대던 무교동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경아. 당신은 아주 작은 여자였다. 팔등신도 아닌, 책갈피에 꽂힌 덕수궁의 가을 낙엽처럼 영원히 보존된 여자였다. 당신은 한글세대 1기생이자 전업 작가인 내가 창조한 여인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번쯤 주머니의 손수건처럼 가지고 싶은 여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나눠준 전단지처럼 한번 알았다가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성인동화 속 아련한 여인이 바로 당신, 경아였다.

그런데 누가 당신을 호스티스라 부르고, '별들의 고향'을 호스티스 문학이라 부르는가. 비(非)체제주의자였던 당신과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퇴폐와 상업주의로 몰아붙이는 건가. 왜 당신이 호스티스인가. 그 시절 빨간 제복을 입고 술을 나르는 맥주집 아가씨일 뿐, 술은 따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왜 예쁜 당신이, 26세 꽃 다운 나이에 죽은 당신이 호스티스여야 하는가. 오히려 당시 반(反)체제주의를 외치며 당신을 호스티스라 매도한 사람들이 요즘 더 퇴폐적으로 변한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경아. 이런 상상을 해본다. 당신이 지금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도시와 산업이 죽인, 여성을 성(性) 상품화한 남자의 이기심이 죽인, 당신이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다. 당신은 살았어도 또 자살했을 것이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기에. 그래서 더 서글픈 내 젊은 날의 분신, 경아. 잘 가시오.

/배우한기자

■그때 한국일보에는/"영화 "별들의 고향" 흥행 직업여성들 많이 몰린 덕"

73년 가을 출간된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은 무려 100만부 이상 팔렸고, 이듬해 4월26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장호 감독의 영화는 46만명이 봤다. 소설과 영화 모두 전무한 기록이었다. 특히 영화에서 김문오(신성일)의 대사 "오랜만에 누워보는군"과 경아(안인숙)의 "꼭 껴안아 주세요"는 당대 최고의 유행어였다. 그때 한국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中央(중앙)도서전시관은 '작가·명사·저작물 사인 판매기간'을 설정, 첫번째로 인기작가 崔仁浩(최인호)씨를 초청했다. 전시된 작품은 '별들의 고향' '타인의 방' '내 마음의 풍차' '잠 자는 신화' 등 4권. 동전시관이 조사한 4월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별들의 고향), 4위(타인의 방), 5위(내 마음의 풍차)를 차지한 책들로 3시간 동안 모두 150여권이나 불티나게 팔렸다. (1974년 5월1일자)

'지난 4월26일 國都(국도)극장에서 개봉됐던 영화 '별들의 고향'이 상영 100일째인 2일까지 45만명(초대 및 무료입장 불포함)의 관객을 동원, 한국영화사상 한 극장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 입장과 오래 상영한 기록을 세웠다. 국도극장에서만 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5일 뒤에 終映(종영)하게 될 '별들의 고향'이 히트를 한 것은 대학생층과 직업여성들이 많이 몰려든 탓으로 풀이되고 있다. 어떤 영화제작인사는 "작품 속의 여주인공 '경아'를 흡사 자신의 分身(분신)처럼 생각하는 서울시내의 수만 명 직업 여성들이 빠짐없이 본데다가 술집 등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영화얘기를 들려준 것이 무시할 수 없는 흥행성공의 요소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1974년 8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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