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망망대해에 하얀 점(點) 하나.시나브로 한 점은 돛을 펄럭이며 포말을 일으키는 요트 한 척이 된다. 뭍이 그리운 듯 순풍에 밀려오는 요트의 자태가 눈부시다. 40여일 만의 상륙에 들뜰 법도 한데 요트 안엔 입항 작업을 서두르는 지명(之鳴) 스님의 불호령만 쩌렁쩌렁하다. "어어∼ 안돼, 오른쪽으로 틀어! 뒤쪽에 로프를 묶어야지!"
드디어 안착. 조금 전만 해도 살벌한 모습으로 갑판 위를 휘젓던 스님 일행 6명이 요트에서 내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피곤함도 잊고 온화한 낯으로 합장했다. "얼굴 뵈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타향만리에서 아름다운 연을 맺으니 다 부처의 은덕입니다."
25일 일본 오이타의 무사시 요트항에 '고통의 세계에서 피안에 닿는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호가 닿았다. 1월10일 미국 샌디에이고항을 떠난 스님의 48피트(14.6m)짜리 무동력 중고 요트(15톤)는 거센 풍랑을 헤쳐 2월2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닿았고 3월9일 다시 출발,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이타에 이르렀다.
'지명 스님의 태평양 요트 횡단(본보 3월9일 22면)'은 이제 다음달 8일로 예정된 최종 목적지 부산항 도착만 남겨뒀다. 출가한 몸으로 요트에 올라 무려 2,000마일(약 3,200㎞)이나 되는 바닷길을 헤쳐 나온 스님의 태평양 요트 횡단은 고행을 통해 내세에 해탈하고픈 발원과 섬지역 포교의 소망에서 비롯됐다.
말이 좋아 태평양 횡단이지, 찰나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이 도사리는 일일 터. 거대한 파도에 태양열판이 망가져 망망대해에 고립될 뻔한 적도, 태풍 '수달'이 엄습한 적도 있다. "첫번째 항해보단 멀미도 멎고 파도도 익숙해졌습니다만 무섭도록 고요하고 거무튀튀한 하늘과 검은 바다가 오히려 공포였습니다. 그래도 기도가 통했는지 수달이 우릴 해치진 않고 뒤에서 밀어줘서 예정보다 한달 먼저 도착했지요."
"죽으면 수장한다"는 각서까지 쓴 신도 4명과 세인(世忍) 스님도 지명 스님의 장도(長途)에 동행했다. 하와이에서 몸소 가람(절)을 짓고 구도하는 세인 스님은 "찾아온 인연을 떠밀 수 없어 요트에 올랐습니다.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동치는 바다에서 성직자도 별 수 없습디다"라며 손을 모았다.
갑판장, 항해사, 조달청장(주방장) 등 직함 하나씩을 떠맡은 여신도 4명은 "어휴∼" 한숨에 손사래만 쳤다. 김옥희(65)씨는 "어찌 말로 표현해요. 멀미가 얼마나 심했던지 스님에게 '바다로 떠밀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니까요"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그 숱한 고생은 잊었는지 "기념촬영 하자"는 말에 꽃 단장을 한다.
상륙하기 전 스님의 불호령도 다 까닭이 있다. "나를 믿고 생명을 맡긴 사람들을 어찌 가벼이 해요. 한치 앞도 가눌 수 없는 위험 앞에선 인자한 승려도 무서운 범이 되더이다" 하곤 껄껄 웃는다. 똑같이 일을 하되 스님이 밤잠을 설친 것도, 선장실을 내준 것도 신도들의 안전 때문이다.
"사는 것은 한줄기 파도가 일어서는 것이요, 죽는 건 그 파도가 스러지는 겁니다. 나를 잊고 바다를 잊고 생사까지 잊고(無我無海無生死) 삼라만상을 비추는 바다에 몸을 맡기니 곧 피안이더이다(海印三昧到彼岸)."
스님 일행은 다음달 2일 부산항을 향해, 다시 돛을 올린다.
/오이타=글·사진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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