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새로운 유럽이 탄생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반세기 이상 동서로 갈라졌던 유럽이 이날 단일 공동체로 거듭난다. 폴란드 등 동구권 및 지중해 10개국이 기존 서구 15개국 중심의 유럽연합(EU)에 통합되면서 EU는 명실상부하게 전 유럽 대륙을 지칭하게 됐다. EU 확대는 정치적으로는 유일한 슈퍼파워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연합'이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경제적으로도 미국을 바짝 좇는 세계 2위 단일시장의 출범을 알리고 있다. 장 크리스토프 필로리 EU 집행위원 대변인이 EU 단일통화 유로화 탄생 이후 한꺼번에 10개국 8,000만명을 받아들이는 이번 팽창을 '인류최대의 실험' '빅뱅'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번에 EU에 새로 가입하는 나라는 동구권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와 지중해의 키프로스 몰타 등이다.
새로운 파워
EU가 25개국으로 몸집을 불리는데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장 이후 노골화한 미국의 일방주의였다. 유럽은 세계 유일 패권국 미국과 어깨를 겨눠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EU 관계자들은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하드파워'보다 확장된 EU의 '소프트 파워'가 더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EU 확대의 역내적 의미는 갈등과 분쟁으로 점철된 유럽 역사에 확실한 평화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EU가 기대 만큼 성장할지에 대해 회의하는 시각도 많다. 이라크 전쟁에서 나타났듯 영국은 반전국인 프랑스 독일과 대립했고 미국의 영향력이 큰 폴란드 등은 오히려 미국을 지지했다. 25개국이 국가연합이라는 단일한 모자를 썼지만 개별국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핵심적 주권 사항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회원국 대부분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안보 우산 아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회의론은 EU의 중앙 집권적 의사결정을 강화하는 EU헌법이 마련되고 'EU 대통령'이 취임해야 어느 정도 잠재워질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단일시장
팽창의 실질적 효과는 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인구 4억 5,000만 명에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단일 시장으로 거듭날 EU는 투자와 고용창출이라는 과실을 맛보게 된다.
가장 가시적인 결과는 EU의 공식 화폐인 유로화가 제2의 기축통화로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는 점이다. 라인하르트 펠크 EU 경제사회이사회 과장은 신규 회원국 10개국이 재정, 환율, 금리 등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당장 유로화를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이번 가입으로 유럽 대륙은 결국 유로화로 통일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EU 국가중 현재 유로화를 쓰는 12개국은 세계 GDP의 16%, 국제무역의 18%를 점하고 있다.
EU 확대는 무역과 관세면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온다. EU의 평균 관세율보다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는 신규 가입국들이 EU의 현행 관세동맹에 자동 편입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관세인하 효과가 발생한다. 한국을 포함한 역외 국가들에게는 신규 가입국들에 대한 무역 및 투자여건이 개선되고 기회가 확대됨을 의미한다. 또 신규 가입국들은 올해부터 6년간 EU로부터 409억 유로에 해당하는 막대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역내 투자활성화도 기대된다.
어디까지 팽창하나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출발해 25개국의 국가연합으로 발전한 EU는 동진을 지속, 우랄산맥까지 판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먼저 2007년까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회원국으로 흡수할 예정이다. 인권문제로 가입 협의가 지연되고 있는 터키는 내년부터 EU와 가입협상을 시작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등 발칸 국가들의 가입도 시간문제가 된다.
이들 외에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 구 소련 국가들이 가입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일부 전문가들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등 카스피해 국가들까지 EU에 가입할 것으로 본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지만 알제리 등 북서 아프리카 국가들도 대륙을 초월해 EU에 편입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팽창은 가난한 신규 회원국들이 부자 회원국들에 얼마나 빨리 근접하느냐에 달려있다. 신규 가입 동구권 국가들의 평균 GDP는 EU 평균의 40%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균형은 현재 "왜 우리가 가난한 국가들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가"라는 서유럽의 불만을 낳고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EU 헌법 초안 내용
유럽연합(EU)은 국가연합체로서는 최초로 그 방대한 영역에서 작동할 기본 틀인 헌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헌법 제정은 1999년 유로화 도입으로 경제적 통합에 성공한 EU가 한 단계 더 나아가 정치 통합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 EU 헌법은 5월1일 동유럽 및 지중해 10개국 추가 가입에 따라 인구 4억5,000만 명에 경제 규모면에서 미국을 능가하게 될 '초대형 국가'로서의 EU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법적 토대가 될 것이다.
EU 헌법은 단일유럽조약, 마스트리히트 조약, 암스테르담조약, 니스조약 등 과거에 EU 국가간에 체결됐던 여러 조약을 하나로 포괄하며 EU의 역할과 권한을 규정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헌법 초안은 지난 해 6월 '유럽 미래에 관한 회의'(의장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에 의해 제시돼 EU 정상회담에서 채택됐다.
초안은 EU에 법인격을 부여해 외국과 조약이나 협약을 독자적으로 체결할 수 있게 하고 EU 헌법이 개별 회원국 헌법에 우선하도록 하고 있다. EU 대통령직과 외무장관직을 신설, 정책 결정과정을 효율화하고 외교·안보 분야에서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또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EU 각료이사회와 EU 의회를 그대로 두되 기존보다 확대된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투표권에 있어서는 인구 및 경제 규모에 따른 가중 다수결을 택한 현재의 방식을 대신해 이른바 이중 다수결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중 다수결이란 EU 인구의 60%, 회원국 수의 50%의 찬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의안이 통과되는 방식이다. 이 초안에 대한 논의는 그 동안 난항을 겪어왔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회원국들이 대통령직 및 외무장관직 신설, EU 의회와 집행위원회의 권한 범위 등의 문제를 놓고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EU 정상들은 지난 해 말 헌법안 합의에 실패한 뒤 오는 6월까지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 헌법 태스크포스팀의 스티븐 베르윌겐 위원은 "올 상반기 중에 헌법안이 채택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라고 설명했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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