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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백설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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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백설공주

입력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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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 안경은 마법의 도구다. 안경을 벗으면, 멍청해 보이는 기자가 슈퍼맨이 되고 그전까지 데이트 한 번 못해본 못생긴 여자도 미녀가 된다. 당연하다는 듯이 멋진 이성에게서 사랑 고백도 받는다.KBS2 '백설공주'에서도 안경은 마법을 발휘한다. 거의 평생을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던 영희(김정화)가 안경을 벗자, 성형수술 없이도 상당한 미인이 된다. 심지어 그녀가 몇 년을 두고 짝사랑 해온 진우(연정훈)마저 사랑을 고백할 정도다.

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영희가 그렇게 예뻐진 건 안경을 벗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탤런트 '김정화'이기 때문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김정화가 그 역을 맡았기 때문에 못생겼던 시절의 영희도 좋아하고, 안경을 벗고 나서 예뻐진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설공주'는 '안경 마법'을 부리는 여느 작품과 조금 다르다. 영희는 꼭 김정화처럼은 아니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살도 뺐고(꼭 살을 빼야 예뻐보인다는 시각은 불만이지만), 조금 어리숙해도 착한 성품을 지녔으며, 한때는 진우가 원한다는 이유로 어울리지 않는 모델에 도전했지만 우연히 하게 된 제빵 일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걸 알고 일에도 열심이다.

영희는 남이 아닌 자신을 향한 안경을 벗은 것이다. 못생겼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잔뜩 웅크려있던 사람이 안경을 벗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도 정말 타고난 외모가 아니라면, 그 사람을 멋지게 보이게 하는 건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라 그가 가진 것으로부터 나오는 당당한 자기 스타일 아닌가.

여전히 '안경'을 쓰고 있는 건 희원(오승현)이다. 그녀는 숱한 성형수술로 미모와 좋은 직장, 그리고 좋은 남편감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성형수술을 원하고,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언제고 다른 남자에게 갈 준비를 한다. 그녀는 외모나 직장, 혹은 남자처럼 자신을 꾸며주는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백설공주'에서 영희의 변신은 단지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 스스로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예쁜 사람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아는 것이었다.

자, 그러면 안경을 벗은 공주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제 예뻐졌으니 오매불망 기다리던 왕자님의 사랑을 받으며 결혼할까.

아니, 왕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안경을 벗고 눈이 밝아진 공주가 더 이상 그만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영희는 진우 대신 나이도 어리고 직장도 없는 동생 선우(이완)를 '스스로' 선택하고, 이제는 반대로 진우가 영희에게 매달린다. 안경을 벗으니 할 일은 너무나 많고, 꼭 반듯한 왕자님만 사랑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공주라고 꼭 왕자님만 기다릴 필요 있나. 그게 여성작가의 인터넷소설을 원안으로 한 '백설공주'가 다른 트렌디 드라마와 차별되는 부분이다.

당신을 가리는 뿌연 안경을 벗어라. 왕자님이 올지는 미지수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될 것이다. 왕자님말고도 너무나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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