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막을 올린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초반 화제작은 일본 감독 주고쿠 쇼이치(中國正一·44)의 '815'다. 24, 25일 전주 '영화의 거리'는 의미심장한 제목과 야한 스틸 컷을 내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가득했다.기모노 차림의 주고쿠 감독은 영화 시작 전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기쁩니다"라며 관객을 반겼다. 영화는 동성애 남성, 제국주의에 물든 한국인, 창녀에게 화대를 주고 일본의 우익주의를 설파하는 노인,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기 안양시를 찾은 재일동포 3세 등 여러 부류의 인간 군상을 내세워 한·일의 역사 교류와 반전반핵 등 주제를 담았다. 등장하는 인물만큼이나 수박씨를 뱉어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만화적 발상, 한국과 일본의 깊은 인연을 상기시키는 신화적 발상 등이 황당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는 '815'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창녀에게 일본의 정신을 강조하는 노인을 보면서 오히려 우익 인사가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호텔 스위트룸에 창녀를 부른 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모른다며 주먹으로 여자를 무참하게 때리는 중년신사를 보면서 일본 우경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년신사는 여자를 때린 뒤 엽기 포르노를 보면서 태연스레 초밥을 먹는다.
극중 치마저고리와 장구, 주주클럽의 노래를 삽입하는 등 주고쿠 감독의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0년 전 우연히 본 조선백자 덕이다. "조선백자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왜 난 조선백자를 좋아하게 될까 자문해봤죠. 마침 제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사가(佐賀)현에 백제 사람들이 건너와 쌓은 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이런 사실 자체가 "너무나 영화적"이라고 했다. "그러니 제가 재일동포 3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재일동포 125세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는 한국의 대중음악 음반을 사서 듣고, 영화배우 전지현을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잡종이다"라는 극중 대사가 영화의 주제가 아니냐고 물었다. 주고쿠 감독은 "한·일 양국이 먼저 서로의 역사를 이해해야 평화로운 미래, 상생의 미래가 시작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고교 역사 교사를 하면서 영화 작업을 해온 그는 고교 때부터 24년간 영화를 만들어온 영화광이다. 1997년 제작사 토푸(東風)를 설립한 이후 큐슈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98년 16㎜ 단편영화 '윌리'를 제작했고 2000년에는 16㎜ 중편영화 '물고기 되기'를 완성했다. '815'는 2002년에 만든 그의 첫 장편 디지털 영화다. '815'는 26일 한 번 더 상영한다.
/전주= 글·사진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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