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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탄핵철회와 상생의 정치

입력
200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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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을 둔 부부가 이혼을 하려 법원을 찾았다. 마침 담당판사는 취급사건이 상급심에 가는 일이 거의 없는 유능한 법관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떤 판결을 해도 어느 한 쪽이 불복할 것 같다. 궁리 끝에 판사는 부부를 조용히 불렀다. 아이가 셋이라 공평히 나눌 수가 없으니 다시 부부생활을 지속해 하나를 더 낳아 오라고 했다. 부부는 더 이상 법원을 찾지 않았고 이 판사의 결정은 역시 최종심이 됐다. 오래 전에 들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총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치판이 탄핵철회문제를 두고 다시 대립하고 있다. '상생의 정치' 운운하며 표 달라고 외칠 때 묻은 침이 채 마르기도 전이다. 울고, 기고, 엎드리면서 했던 다짐이 또 바뀐 것이다. 정치는 이런 것이고, 정치인이란 모두 저런가 하고 반문해야 소용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대치를 풀 방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답답하기는 피아가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 판사와 같은 번뜩이는 지혜다. 파경직전의 부부를 화해시키듯 여야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해법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상대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아이를 낳는' 노력 보다는 있는 아이를 서로 더 차지하려 해서야 판은 언제나 깨지게 마련이다.

탄핵철회를 제기한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우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여기에 총선돌풍의 주역으로 일약 제3당이 된 민주노동당이 맞장구치고 있다. 이들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으로 확신한다. 나아가 총선민의도 '철회'라고 굳게 믿는 듯 하다. 양당은 16대국회가 탄핵안을 털고 가도록 한나라당에 대표회담을 제의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철회론의 논거는 이렇다. 어차피 헌재에서 기각될 것이 뻔한데 정치권이 먼저 철회하는 편이 상생의 정치를 위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유증은 남는다. 이는 또 새롭게 출범하는 17대 국회에 부담요인 임엔 틀림없다. 어떤 형태로든 새 국회 개원 전 정치적 매듭이 필요하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우선 이 문제의 키를 쥔 한나라당이 부정적이다. 그들은 헌재 심리결과를 기다려 결과에 승복하자는 원론적 입장이다. 그들도 탄핵이 수용되리라고는 믿지 않지만 '혹시나'하는 의외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는 것 같다. 박근혜 대표는 탄핵철회를 의제로는 만나지 않겠다고 완강하다. 자신의 한계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권이 박 대표에게 그런 '통 큰 결단'을 기대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녀가 무슨 재주로 탄핵풍 탓에 배지를 떼게 된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또 채근 한다고 이들이 응하겠는가.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렇다. 이들도 탄핵풍에 거의 초 죽음상태까지 갔었다. '탄'자 소리만 들어도 질겁할 그들의 등을 떠밀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주변에서 패장에게 항복서명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연유다.

그렇다고 청와대 내실에 몇 달째 유폐돼있는 대통령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지금 대통령의 결단을 요하는 사안이 어디 한 두 가진가. '식물대통령'의 장기화는 국가적 재앙이다. 이른 시간 내 이 사태를 종결하기 위해선 우선 여당부터 전략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야당의 협력을 통한 탄핵철회 가능성은 이미 물 건너갔다. 더 이상 매달리는 것은 시간적 낭비에 불과하다.

현 시점에서 한가지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헌재의 심리기간을 가급적 단축하는 것이다. 재판이 당사자주의라 해도 탄핵안 심리만큼은 달라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이 정지된 비상사태는 이른 시일 내 종결돼야 한다. 철저한 심리를 핑계로 시간을 끌다 보면 정쟁화 되기 십상이다. 특히 일부 여당의원의 헌재자극 발언은 경솔하다. 일을 재촉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더디게 할 뿐이다.

/노진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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