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시계는 일반 시계보다 6개월이 빠르다. 갓 초여름에 접어들었지만 국내 양대 컬렉션인 스파컬렉션(16~18일)과 서울컬렉션위크(4~6일)는 올 가을ㆍ겨울 유행경향을 제시하며 지난 18일 숨가쁜 일정을 마쳤다. 1920년대부터 80년대를 오르내리는 복고의 거대한 틀 속에 럭셔리와 로맨티시즘, 스포티즘, 빈티지 등 다양한 감성을 녹여낸 이번 컬렉션의 ‘키워드 톱5’를 소개한다.
●떴다, 젊은 피
올해 컬렉션 최고 화제는 단연 신인 디자이너들의 약진이다. 특히 서울컬렉션위크는 다소 노후한 이미지의 카프다(KAFDAㆍ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그룹이 실력파 신인들을 대거 영입한 덕분에 활력이 넘쳤다.
데뷔 무대를 가진 니트 디자이너 권성하와 김성달의 하&달 듀오는 손 모양의 주머니를 단 니트 티셔츠처럼 해학적인 디자인부터 실크보다 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꿈결 같은 니트 원피스까지 니트의 다양한 변주를 소개해 박수를 받았다. 강기옥은 데님 소재에 스와롭스키 크리스탈을 박아넣은 우아한 드레스를 만들어내는 솜씨로 주목받았고 역시 데님소재를 사용한 이진윤은 신인답게 형식에 얽매이지않은 아방가르드한 재단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스파에서 서울컬렉션위크로 자리를 옮긴 조은미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영감을 얻은 여신룩(Goddess Look)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대리석처럼 창백한 모델들은 드레이프가 강한 실크 드레스와 블라우스를 잇따라 소개했고 특히 스트링 장식이나 선 장식 등을 가슴과 어깨, 허리 부분에 X자로 둘러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스파컬렉션에서는 어머니인 진태옥씨와의 ‘모녀대결’로 화제를 모은 노승은씨가 드라마틱하면서 안정적인 블랙로맨티시즘 무대를 선보여 찬사를 끌어냈다.
남성복을 응용한 실크 턱시도컬러의 검정색 오버롤스(위아래가 붙은 옷)부터 가죽을 패치워크한 재킷과 스카프, 슬프고 고상한 귀족이미지를 자아내는 검은 벨벳 투피스류 등은 검정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무대였다. 김동순씨의 딸 송자인씨는 미국 디자이너들의 영향을 받은 경쾌하고 스포티한 캐주얼 디자인을 주류로 스트리트패션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로맨티시즘
올 가을 복고주의는 한층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S/S(봄여름)시즌 럭셔리 스포티즘을 트렌드로 제시해 박수를 받았던 디자이너 루비나씨의 쇼는 레트로와 빈티지 로맨티시즘의 아름다운 조우를 보여준 무대. 50,60년대 풍 체크무늬 펜슬스커트와 허리를 벨트로 묶는 하프코트 혹은 하프니트류의 매치, 재킷 소매와 깃에 섬세하게 장식된 레이스 등은 성숙하고 도도한 여성미의 전형을 보여줬다.
한혜자씨는 레트로무드를 극대화해 1920년대 스윙밴드 시절의 유쾌한 나이트 라이프를 그대로 무대에 올려놨다. 경쾌한 재즈음악과 반짝이 스팽글를 단 실크드레스와 턱시도, 넥타이를 목걸이처럼 장식한 여성까지 미국 재즈영화의 주요 패션용어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문영희씨는 전위적이면서 자기 색깔이 분명한 무대로 주목받았다. 묶음과 풀어헤침의 이중적 의미를 옷에 녹여낸 작품들은 마치 欖側퓽?다발로 묶어놓은 듯한 행커치프 밑단 재킷과 종 모양의 스커트, 언밸런스하게 여민듯한 재킷 등에서 경지에 올랐음을 느끼게 했다.
또 신예 임현희씨는 빈티지한 느낌의 니트웨어를 소개해 눈길을 모았다. 한때 디자이너 홍은주씨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유럽풍의 고색창연하면서 부서질 듯 섬세한 디자인 등이 섬세한 니트와 레이스를 통해 재현됐다.
남성복에서 레트로 열풍은 메트로섹슈얼 트렌드와 결합되면서 좀 더 강력해졌다. 장광효씨는 60년대 풍의 정장차림에 조끼를 재킷 위에 꺼내입고 재킷의 팔과 몸판 부분의 소재를 달리하는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홍승완씨는 셔츠 밑단에 주름장식을 달고 레이스 스카프를 두르는 등으로 여성적인 표현을 담았으며, 우영미씨는 절제미가 돋보이는 간결한 선과 감성적인 중간 톤 색상 배합으로 박수를 받았다.
●상류사회를 입다
스포티즘은 말이 필요없는 시대의 키워드. 단지 올 가을엔 세로 줄무늬 일색의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해 가로줄이나 대각선이 두드러지고 소재가 고급화하는 등 전반적인 업그레이드가 제안될 전망이다.
진태옥씨의 경우 니트의 짜임을 통해서, 우븐은 가로로 핀턱을 잡는 식으로 가로선을 강조한 럭셔리 스포티즘을 선보였고 박윤수씨는 뉴스보이캡에 니트와 체크가 큼직하게 들어간 통바지, 혹은 시가렛스커트를 매치시켜 경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상을 선보였다.
파리 오트쿠틔르의 초청멤버로 활동하는 김지해씨가 한국시장을 겨냥한 프레타포르테 무대도 관심을 끌었다. 블랙&화이트를 주색상으로 허리선을 강조한 몸에 꼭 맞는 드레스와 블라우스, 하반신의 라인을 드러내는 길고 가는 실루엣의 실크바지 등은 상류사회 여성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SFAA·서울컬렉션위크 이모저모
●모자, 모자, 모자…
복고무드 탓인지 올 컬렉션에선 모자를 포인트 액세서리로 활용한 디자이너들이 유난히 많았다. 모양도 뉴스보이캡, 중절모, 헌팅캡, 벙거지, 니트모자 등 각양각색. 그냥 스카프로 머리를 두루말아 올린 것 같은 스타일이나 널찍한 헤어밴드 등도 많이 사용됐다.
●원맨쇼 패션쇼?
서울컬렉션위크에서 원지해씨의 패션쇼는 단 한명의 남성모델이 나와 단 한벌의 옷을 입고 벗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무대를 종료, ‘관객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회당 7,000원을 내고 패션쇼를 보러온 관객들의 항의는 당연. 서울컬렉션위크 참가디자이너 선정위원이었던 한 패션인은 “선정단계에서 떨어진 디자이너들도 많은데 이렇게 무성의한 원맨쇼를 할 거면 왜 참가신청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협회가 당분간 컬렉션참가를 불허해야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패션쇼 시작은 연예인 올때까지
패션계에서 연예인 마당발로 통하는 강희숙 지춘희 손정완씨의 쇼에는 대규모 스타군단이 참석했으나 이들이 올 때까지 보통 20~30분씩 쇼타임이 지연돼 뒷말을 낳았다.
●FnC코오롱, 여성 하이패션계 진출?
파리 오트쿠틔르 디자이너인 김지해씨의 서울컬렉션위크 참가는 FnC코오롱의 후원으로 이루어져 눈길. FnC코오롱은 현재 김씨와 국내서 내셔널브랜드를 내기위한 협상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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