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3일 불법 대선자금 국고 헌납시 출구조사 최소화 방침을 시사한 것은 불법자금 수사의 명분은 살리되 정치권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의 카드로 볼 수 있다.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정치권이 새롭게 출발하려면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는 게 나을 것"이라며 불법자금 환수에 여전히 강한 의지를 보였다. 대선자금 수사에 들어가면서 검찰은 '잘못된 정치관행의 혁파'를 명분으로 내걸었고 실제 이번 총선에서 대폭 물갈이가 이뤄진 데는 검찰 수사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검찰은 자부하고 있다. 검찰은 수백억원의 불법자금을 추징하는 것으로 수사의 대미를 장식하려 했지만 '정당으로 들어간 불법자금은 추징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목표에 차질이 생겼다. 때문에 전면 출구조사를 통해 유용이 드러난 개별 정치인을 상대로 추징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야권의 반발과 수사 장기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검찰은 대신 시가 700억원 상당의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키로 한 한나라당의 총선 공약을 주목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3월 한나라당 또는 당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의 추징선고가 있을 경우 연수원 처분 자금으로 지급하고 추징금을 내고도 남는 돈은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모자라면 여의도 당사 매각대금으로 보충한다고 했다. 이 약속이 지켜지면 불법자금의 국고환수라는 수사목표는 일단 달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 전면 출구조사를 통해 200개에 가까운 지구당을 뒤진다 해도 거액의 추징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검찰로서도 부담을 덜 수 있다.
다만 검찰은 이미 중앙당 지원금 유용 혐의로 고발된 한나라당 당선자 3명에 대해서는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앞으로 추가고발이 들어오는 정치인, 검찰이 자체 인지한 사건이나 죄질이 중한 정치인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당선자 3명 외에도 유용 혐의가 포착된 정치인은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애당초 출구조사를 언급한 것도 대다수 지구당을 염두에 두었다기 보다는 혐의가 드러난 정치인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들 정치인에 대한 수사만으로도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이 입을 타격은 매우 클 수 있다. 일각에선 한나라당이 '탄핵철회'라는 정치적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수사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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