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삼성생명을 꺾고 '만년꼴찌' 금호생명을 취임 6개월 만에 여자농구 정상으로 이끈 김태일(43) 감독은 이날 밤 신라호텔에서 열린 우승축하연에서 그룹 최고위층으로부터 연봉을 1억원에서 5,000만원 이상 인상해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연봉 1억5,000만원은 여자농구 감독 중 최고대우. 무명의 농구팀 통역 출신인 그가 최고 지도자로 인정 받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그의 성공에는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인고의 노력이 있었다. 선수로서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경력은 성균관대 가드로 일궈낸 전국체전 우승. 그러나 '무명출신이라는 핸디캡이 오히려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 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만 믿고 91년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코치 연수를 받았다. 95년 귀국했지만 실업팀 지도자 자리는 언감생심이었고, 결국 수원여고 코치 등을 전전하다 98년 나산(현 KTF)으로 옮겼다. 그러나 기존 코치가 있었기 때문에 통역으로 발령이 났다.
2001년에 가까스로 감독대행까지 올라갔지만 그 해 5월 성적부진으로 해임됐다.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2년 5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만년 꼴찌팀 금호생명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미국연수시절부터 빠른 공수전환을 통한 다이내믹한 '활력농구'를 표방한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온 '날다람쥐' 김지윤과 '악바리 슈터' 이언주를 데려왔다. 다행히 구단측도 적극 지원했다.
용병선발도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났다. 드래프트 당시 정통센터 셔튼브라운을 지명하고도 '높이'에만 중점을 두자는 주위 의견을 배제하고 내외곽 전방위에서 활용도가 높은 잭슨을 선발했다. 김 감독의 안목은 정확히 맞아 잭슨은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개막 후 돌풍을 일으키다 4라운드 들어 5전패의 위기에 내몰리자 꼴찌팀 특유의 패배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던 것.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셔튼브라운이 발목부상, 김지윤과 이언주는 각각 손등과 무릎을 다쳤다. 진퇴양난의 순간, 김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정규리그 우승 목표를 과감히 접고 힘을 비축하며 챔피언결정전으로 모든 사이클을 수정한 것. 결국 챔프전은 체력의 우위를 잡은 금호생명의 압승이었다.
우승 후 그는 일등지상주의의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금호생명과 나의 인생역전은 닮은꼴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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