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을 통해 152석을 차지하는 과반정당으로 탈바꿈했지만 당내 역학구도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듯 하다. 가깝게는 당 운영의 주도권, 멀게는 차기 대권후보 향배에 대한 당내 시선이 여전히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두 사람은 이번 총선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성적표를 받았다.정 의장은 선거전 초반 '노인 폄하' 발언으로 당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지만 비례대표 후보직을 내던져 의원직을 포기하는 막판 결단으로 과반 의석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총선을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로 끌고 가면서 정 의장의 실언으로 촉발된 노풍(老風)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는 평가다.
총선을 통해 김 원내대표의 외연이 넓어졌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번에 원내에 진출한 이인영 당선자 등 20명 안팎의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대부분이 '김근태계'로 분류된다. 그래서 그를 지지하는 의원이 전체의 3분의 1인 50여명에 달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정 의장 역시 홍창선 조성태 정의용 최규식 정덕구 채수찬 박영선 민병두 당선자 등 다수의 전문가 그룹을 발탁, 당내 기반을 공고히 했다는 지적이다.
두 사람의 상반된 정치스타일은 보는 이의 흥미를 더욱 돋우고 있다. 정 의장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읽고 재빨리 실행에 옮기는 데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평이다. 비례대표 후보직 사퇴가 그렇고, 창당과정에 불법자금이 유입된 사실이 드러나자 지체 없이 당사를 옮겨 파문 확산을 막은 것도 마찬가지다.
김 원내대표는 명분과 논리를 중시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논리와 도덕성이 주변에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이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불법자금 수수고백'으로 자기 발등을 찍었지만 이는 오히려 그의 도덕적 기반을 강화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당의 정책방향을 두고도 두 사람은 "가려운 곳을 먼저 긁자"는 '실용주의'(정 의장)와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중도 개혁'(김 원내대표)으로 갈리고 있다. 물론,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에게 각각 "깊이가 부족하다"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따라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김 원내대표와, 정 의장이 지원할 천정배 의원의 맞대결이 될 것으로 보이는 신임 원내대표 경선은 총선 이후 두 사람의 내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번째 시험대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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