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노란색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지금 한창 피어나 어딜 가나 강렬한 노란빛을 뽐내는 개나리가 있고요, 혹시 나무에 관심을 두고 사신다면 산수유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자나무도 있고 개느삼도 있고…. 그런데 저는 생강나무가 먼저 떠오릅니다. 숲에서 노란 꽃으로 봄을 맞이하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잎도 나기 전인 봄 숲을 거니노라면, 생강나무는 회갈색 숲에서 유독 파스텔톤으로 물이 들 듯 피어나는 노란 빛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또 상큼하고도 그윽한 특유의 맑은 향기로 발길을 사로잡지요. 만일 '생강나무가 뭐야?'라고 궁금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숲 속에 피어나는 산수유를 닮은 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산수유는 대부분 부러 심은 나무들이니 도시의 공원에 있거나 시골로 내려가도 마을 가까운 곳에 있기 마련이지만 생강나무는 아무도 심어주지 않는, 이 땅의 숲에서 절로 나는 나무입니다. 봄에 잎도 없이 가지에 노란 꽃이 피었다는 공통점으로 산수유와 혼동되더라도 자라는 곳을 관심 있게 보시기만하면 금새 생강나무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산수유는 1㎝ 정도의 작은 꽃자루가 일정한 길이로 달리는 반면 생강나무 꽃은 자루가 아주 짧고 다닥다닥 달려 잘 구분할 수 있습니다.
숲에서 만난 그 나무가 생강나무라는 심증이 가시면 물이 오른 여린 가지를 조금 잘라 비벼 보십시오. 은은한 생강 냄새가 납니다. 물론 생강나무란 이름이 붙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강원지역에서는 이 나무를 두고 '동백나무' '올동백' '산동백'이라고 부릅니다. 왜냐구요? 예전에는 붉은 꽃의 동백나무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썼는데, 추워서 동백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는 이 생강나무 씨앗으로 기름을 짰기 때문입니다. 정선아리랑을 들어보시면 '강 건너 올동백이 다 떨어지니 강 좀 건너달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굽이굽이 휘몰아치는 아우라지 나루터에서 강 건너 피어나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을 보며 님 생각을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유정의 '동백꽃'도 붉은 꽃 동백이 아닌 바로 이 생강나무고요. 이 말고도 생강나무는 어린 잎이 작설차가 되기도 하고 향긋한 음식이 되기도 하지요. 가을이 되어 물드는 노란 단풍은 또 얼마나 고운지.
그런데 오늘, 함께 연구하는 정 박사님과 숲을 산책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알았습니다. 생강나무는 암꽃이 달리는 암나무와 수꽃이 달리는 수나무가 따로 있습니다. 물론 똑같이 노란색이어서 같은 나무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암꽃은 암술이 발달한 반면 수술은 그 아래 미성숙한 상태로 되어 있습니다. 더욱 재미나는 것은 수나무와 암나무의 비율인데 광릉 숲에서는 12대1, 이웃하는 다른 숲에서는 4대1로 수나무가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하! 그래서 열매 달린 생강나무 찾기가 그리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전적으로는 1대1이어야 할 성비(性比)가 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누가 부러 심는 나무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숙제입니다. 혹 여러분도 봄 숲을 거니시며 생강나무 노란 꽃을 만나시거든 함께 고민해주십시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i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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