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명이나 되는 여성의 국회 진출은 17대 총선이 보여준 특기할 만한 사실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총선기간 내내 두 야당을 대표하는 여자가 텔레비전 화면을 떠나지 않았으니, 나이든 모친이 "이제 여자 세상인 모양"이라고 자탄할 만도 하다. 오랜 습속의 장막을 걷고 여자세상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척박한 대지에 봄풀 돋듯 여성들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그런데 정치권보다 이미 오래 전에 그런 봄을 맞이한 곳이 학계, 특히 인문학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여성교수가 10%도 안 되는 대학과 학과가 대부분인데 사실을 호도하지 말라는 반론이 만만찮겠지만, 교수라는 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수준과 영향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마도 취업난, 특히 여성 취업난 탓이 크겠지만 이즈음 인문학 대학원에는 여학생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오래된 것이어서 박사 학위를 받고 남성과 경쟁하며 학계에서 열정적인 학문활동을 하는 여성학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들 여성학자는 남성에 비해 훨씬 나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경쟁력은 지적 능력과 시간, 두 가지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낫다는 것은 생물학계의 상식이다. 그런데다 요즘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학자의 상당수는, 농담 같지만, 노처녀들이다. 같은 나이의 남성들이 군복무로 공백을 겪고, 결혼으로 육아와 생계에 시달리는 것에 비해 '공부할 시간'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간혹 편하게 만나는 자리에서 여성학자들이 결혼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 인문학의 장래를 위해 참아 줘"라고 흰소리도 한다.
하지만 여성학자들이 대학에서 자리얻기는 여전히 바늘구멍 통과하기나 마찬가지다.
교수채용의 불공정에 대한 지적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 13% 국회 진출처럼 이제 대학도 그 이상의 자리를 여성학자들에게 내주어야 한다.
/조현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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