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라고 배우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국을 떠나려니 감개가 무량하다.17대 총선 결과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학연·지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한다. 나는 반 한국 사람으로 살았기에 그 동안 학연·지연의 덕을 다른 서울 주재 외교관들보다 많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대학에서 특강을 할 기회도 종종 있었다. 나는 주로 대학생들에게 졸업 후 직업 선택 등 장래 문제에 대해 나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했다.
요즘 세태를 보면 부모들의 안목이 너무 단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옆집 철이네 아들은 중국으로 유학 가고 앞집 순이네 딸은 호주로 유학 갔으니 우리도 그래야겠다는 등 유행에 따르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유행 따라 천리 길을 가다 보니 자연히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애초에 아무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남을 따라 하는 일은 항상 일등이 아니라 이등밖에 못한다. 사회에 진출하는 문제는 최소한 10∼20년 멀리 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국은 아직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통하는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자식에게 권력과 금전을 추구하는 쪽으로 세뇌를 한다.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위의 아는 분들의 자녀들은 사법고시 공부를 많이 한다. 그러나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은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요즘 인사말에 '부자 되십시오'란 말이 있다. 어느 광고 문구가 유행어가 된 것이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세상에서는 전인교육이 실패하기 마련이다. 나는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성실하고 올바른 인간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서울 근무 기간에 청계천 골동품 가게를 곧잘 찾아 다녔다. 한번은 내가 거래하는 조흥은행과 관계되는 골동품 한 점을 발견하고 싼 값으로 구입하여 간직하다가 이번에 이임을 기회로 서울 광화문 지점장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조흥은행 박물관에서 이 골동품을 진귀한 유물로 평가한 모양이다.
선물 공세를 하는가 하면 누누이 인사를 해 오고,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자그마한 일이, 사소한 일이 우리 생활 주변에 너무나 많다. 바쁜 일상에서 이런 일에 관심을 갖는 여유가 필요하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법정 스님은 수필을 통해 내게 많은 인생철학을 가르쳐 주셨다. 특히 '무소유'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삿짐을 챙기면서 그 동안 소장해 온 도자기 등의 물품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마음을 비우니까 마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다. 하늘의 내 친구를 찾아서….
/유순달 주한대만대표부 일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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