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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탄핵, 뭘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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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탄핵, 뭘 남겼나

입력
200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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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탄핵제도의 본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규범적으로 보았을 때는 고위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에 위반한 경우 통상적인 사법절차를 통하여 제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통령과 같은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사법절차의 기제가 가동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여 탄생한 것이 탄핵제도다. 이 경우 검찰의 기소에 해당하는 결정을 할 권한을 정치 기관인 국회에 위임하고, 이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헌법재판소와 같은 중립기관이 한다. 심리의 결과 해당 공직자의 행위가 위헌 혹은 위법으로 판명되는 경우 공직자를 공직으로부터 파면한다. 공직자의 민형사상의 책임에 대해서는 법원이 결정한다.이렇게 이해하면 탄핵제도는 국회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제도는 아니다. 탄핵제도는 고위공직자도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에 따라 법원과 검찰은 심판의 대상인 자가 고위공직자라는 정치적 부담을 덜고 통상적인 사법절차에 따라 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3월 12일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은 국회의 공식적인 의견과는 달리 탄핵제도의 본질을 벗어나서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응도 정치적이었다. 그 결과 4·15총선은 탄핵을 주도한 세력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변질의 원인이야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변질 그 자체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때문에 필자는 탄핵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총선에 충실히 반영되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 했다. 이 경우 여당은 국회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국회의 구도는 정국안정에 결코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국회에 부여된 과제, 즉 행정부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 사라지며 야당의 붕괴는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정치배제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는 정치의 중심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행정부와 국회의 통합권력은 거리의 국민과 대칭축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이를 중재할 제도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지극히 불안정한 항해를 하게 된다.

정당의 지역분할이라는 한국 정치의 불행은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예기치 않은 중재역할을 하였다. 탄핵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정당지역구도를 완전히 돌파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정당구도가 우리 정치에 미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여이길 바란다. 다른 한편 이번 선거는 정당의 의사결정에 실패하더라도 지역구도라는 방패에 의하여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과거의 신화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 더하여 지금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제도권에 진입할 수 없었던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기존 거대정당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기존의 거대 정당들은 이념과 정책노선을 뚜렷이 밝히고,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정체성과 안정성을 가져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총선 후 각 정당은 각종 정당개혁을 위한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의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다만 그것이 외부적 혹은 내부적인 원인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끝을 맺지 못했을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대의기관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그리고 국민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가정이 강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국민이 임기 전에 국회의원의 신분을 박탈하는 이른바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론적 보호막 속에서 민주주의에서 강요된 가정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의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는 갈린다. 정당들이 새삼 이를 인식할 기회가 온 것이다.

/전광석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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