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성향 면에서 한나라당이 오른쪽, 민주노동당이 왼쪽을 차지한 17대 국회에서 과반여당 위치를 점하게 된 열린우리당이 어떤 정체성을 택할지 주목된다.우리당은 두 야당의 중간을 자처하며 중도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때 '잡탕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내 이념분포는 좌, 우로 넓다. 때문에 책임여당이라는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 내부가 쪼개지지 않고 구심점을 하나로 모아가는 게 중요한 관건이다.
정동영 의장이 최근 경제안정 위주의 실용주의적 개혁 노선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일단 당내에서는 개혁속도조절론 분위기가 잡혀가는 듯 하다. 그러나 26∼28일 당선자 워크숍에서 당 정체성 문제를 본격 토론키로 해 개혁당 출신, 진보소장파 의원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변수다.
정 의장은 17일 "개혁의 절대적 기준은 국민 요구인데 지금은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게 그것"이라며 당의 지향점을 제시했다. 그는 또 20일에는 17대 국회 초반 정치개혁특위 가동을 통한 정당법 개정 등을 언급했다. 이는 당의 기조를 경제·민생 안정 위주로 하면서 쟁점이 많은 사회개혁 법안 보다는 정치개혁·부패방지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근태 원내대표도 전날 당정협의에서 "경제개혁과,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상충되는 점이 있지만 원칙을 지키면서 단기적인 경기 문제의 효율적 대처 방안을 논의하자"고 밝혀 개혁 속도조절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의 한 측근도 "절차의 하자로 인해 개혁성 자체가 훼손당하는 일이 없어야 지속적인 개혁추진이 가능하다"며 "당선자 워크숍을 통해 국민적 동의가 뒷받침되는 개혁법안부터 추려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개혁당 출신 및 소장파 의원들이 지도부의 이런 구상을 선선히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개혁당 출신 당선자들은 이미 자체 모임 등을 통해 당 정체성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논란이 적지 않은 국가보안법 개폐, 정기간행물법 개정 등을 후순위로 미루는 것에 대한 진보소장파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우리당 지도부를 만나 어떤 주문을 내놓을지도 관심이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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