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호(43) 웅진식품 사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이다. 그는 37세에 이 회사 부장에서 사장으로 뛰어 올랐고 국산 음료 '아침햇살' '초록매실' '가을대추'를 연달아 히트시켜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단숨에 흑자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그가 이런 성공을 이루기까지에는 문학평론가 이어령(70)씨와의 인연이 숨겨져 있다.그가 사장에 취임하던 99년 웅진식품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는 95년 웅진그룹에서 웅진식품으로 처음 발령받아 '가을대추'를 히트시켰으나 회사 사정으로 그룹으로 복귀했고 이후 웅진식품은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 해마다 150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었고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이때 승부수로 내놓은 제품이 쌀 음료 '아침햇살'. 한국인의 주식인 쌀을 음료화한 '아침햇살'이 성공할 것이라는 '감'이 들었다. 그런데 고민이 있었다.
"'아침햇살'이 어떤 이유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을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증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 자신은 물론이고 아무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더군요."
이 때 갑자기 그의 머리에 떠오른 인물이 이어령씨였다. 그는 이씨가 TV에서 해박한 지식으로 청중을 매료시키던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일면식이 없던 이어령씨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찾아 뵙겠다고 했지요. 평창동의 자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자마자 30분 정도를 '아침햇살' 시제품을 들고 개발 과정과 궁금한 내용을 신이 들린 듯 떠들었습니다."
이씨는 조 사장이 혼자서 말을 이어가는 것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직한 목소리로 '아침햇살'의 의미를 설명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은 많지만 숭늉을 해먹는 민족은 우리 뿐이라는 것. 숭늉은 맵고 짠 음식을 중화시키고 입 냄새를 없애주는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 숭늉을 현대화한 것이 바로 '아침햇살'이라는 것. 그러므로 '아침햇살'은 문화사적 사건이며 성공할 것이라는 요지였다.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가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내용이었지요."
이씨는 '아침햇살' 출시 발표회 때에도 직접 이 같은 내용을 강의했다. '아침햇살'은 대성공이었다. 99년 출시 첫 해에 매출액 400억원을 기록했고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더니 올해에 1,000억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회사는 단숨에 흑자로 전환했고 직원들 사이에 생기가 돌았다. 이씨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씨와의 인연은 99년 말에 출시한 '초록매실'에서도 이어졌다. 이씨는 '초록매실'을 기획했고 '아침햇살' 출시 때와 비슷한 궁금증을 갖게 됐다. 조 사장은 이씨에게 '초록매실'이 어떤 문화적 의미가 있을지를 문의했고 명쾌한 답변을 듣게 된다.
매실(매화)은 전 세계에서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에서만 생산되는 식물이라는 것. 농산물 개방 시대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매실이라는 것. '초록매실'은 우리 농산물을 세계로 수출한다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요지였다. 그러면서 이씨는 자신이 100권으로 기획중인 '한중일 문화비교대전'(생각의 나무 펴냄)의 첫 권을 내밀었다. 그 제목이 바로 '매실'이었다. 이씨는 매실을 3개국을 묶는 연결고리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록매실은 출시 첫해에 매출 1,000억원을 기록했고 미국,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아이디어파트너'로 부르며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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