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하면 붉은색 머리띠가 떠오른다. 그가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10여 년 전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의장을 맡은 뒤부터였다. 파업현장에는 항상 점퍼 차림에 붉은색 머리띠를 두른 그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머리까지 듬성듬성해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8년5개월 동안 구속·수배생활을 반복하며 그는 '노동운동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그가 이제 당당히 금배지를 달았다.이뿐이랴. 'YH사건의 주역' '구로공단 파업 주동자' '여성 노동운동의 대모' 등 그야말로 쟁쟁한 '노동전사'들이 민노당 깃발을 들고 여의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재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올해 춘투가 걱정이라느니 경제회복 기대가 어렵게 됐다느니 하는 전망이 나돌고 있다. 민주노총의 전위 조직인 민노당의 원내 진입은 당연히 이런 우려를 낳는다. 임·단협이 시작되면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위세를 업은 개별 노조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사용자는 뒤에 버티고 선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용자의 더 많은 양보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을 악화시킬 거라는 게 재계의 논리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얘기지만 거리로 내몰렸던 과격 세력이 상당부분 제도권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어차피 제도권에 들어선 이상 대중화는 필수적이므로 기존 정치권과 어느정도 타협은 불가피하다. 2008년에 제1야당, 2012년에 집권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이런 과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도 과거처럼 진행된 노동운동은 개선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머리띠를 불끈 두르고 투쟁을 위한 투쟁만을 일삼던 과거의 방식으로는 호응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민노당이 어떤 정치적 행보를 취하든,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기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 보낸 지지는 경악할 정도였다. 정당지지율은 무려 13%에 달했다. 그것도 16개 시·도에서 고르게 표를 얻었다. 16대 총선에서의 득표율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엄청난 변화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민주당 등 기존 정당에 대한 염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후보는 다른 당을 찍었지만 당은 민노당을 선택했다"는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뭔가 정치판의 변화를 열망하는 바람이 민노당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이 기존 정치권의 관행을 확 뜯어고치는 데 주력해 주기를 많은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사회 각 부분에 강도 높은 진보적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수십 년간 계속된 보수정당 중심의 정치행태를 바꿔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민노당으로서도 처음부터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과 믿음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부응해 민노당은 세비 가운데 노동자 평균임금만 받고 나머지를 정책개발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불체포· 면책특권의 과감한 제한과 국회내 의원 전용 출입문 및 엘리베이터 폐지 등의 신선한 변화도 약속했다.
국민들은 서민과 동고동락하는 국회의원을 보고 싶어한다. 또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경쟁을 통해 우리 정치가 선진화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민노당은 그 바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충재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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