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코엘류호'가 출범 14개월 만에 좌초됐다. 움베르투 코엘류(54)한국축구대표팀감독은 재임기간 9승3무6패의 성적을 냈지만 어느 한 경기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불명예 퇴진했다.그러나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침체된 한국축구의 현주소가 전적으로 코엘류 감독의 잘못 때문일까. 한일월드컵 4강 신화는 단순히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협회, 기술위, 코칭스태프, 붉은 악마, 전국민 등이 혼연일체가 돼 이뤄낸 쾌거였다. 하지만 이후 높아진 눈높이를 협회, 기술위, 선수 등이 따라주지 못했고, 결국 코엘류 감독의 사퇴라는 결과를 낳게 됐다. 월드컵이후 한국축구는 발전이 아닌, 오히려 퇴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실패는 종전처럼 또 다시 감독 한 사람의 책임으로 결론이 났을 뿐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먼저 국가대표 코칭스태프 및 선수 선발 권한을 갖고 있는 기술위원회를 보자. 기술위의 결정으로 선임한 코엘류 감독이 중도 하차했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 '복지부동'한다는 비난을 들어왔던 기술위는 두 가지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첫째는 실패할 감독을 선임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퇴가 이 지경이 될 때 까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술위는 지난해 10월 '오만 쇼크' 당시 단 한명의 기술위원도 파견하지 않아 대표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몰디브 망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대표팀 관리도 소홀했다. 지난달 31일 몰디브전에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능한 차두리(프랑크푸르트)를 소집하는 등 정보부재를 드러냈다. 협회 내부에서도 "코엘류 감독이 중도 하차한 마당에 기술위도 동반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협회 지원 등 제도적 지원장치는 거스 히딩크 감독시절에 비하면 '빵점' 수준이었다. 코엘류감독이 성인대표팀을 전담할 비디오분석관을 요구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수 차출에도 잡음이 잇달았다. 대표팀을 많이 보유한 프로구단들의 반대에 부딪혀 적재적소에 원하는 선수를 기용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한일월드컵 때 K리그 일정까지 늦춰가면서 장기간 합숙훈련을 했던 것에 비하면 '시간이 부족했다'는 코엘류 감독의 하소연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선수들의 해이해진 정신력은 더 큰 문제다. 월드컵 이후 태극전사들은 목표의식을 상실한 것은 물론 태극마크에 대한 긍지와 투지마저 실종됐다. 약체팀을 깔보는 나쁜 버릇까지 생겼는가 하면 자신의 몸값 올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이다.
2006독일월드컵이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안된다는 각오로 코치진의 변화, 협회의 체질 개선, 선수단 물갈이 등을 통해 한국 축구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 코엘류 항변성 기자회견
"부임 14개월동안 (선수들과) 훈련한 시간은 72시간에 불과했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대한축구협회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만큼 충분한 지원도 없었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문을 연 코엘류 감독은 "나는 사임한 것이 아니라 축구협회와 합의, 계약을 종결시킨 것"이라고 말해 자진 사퇴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축구에서 목적을 달성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협회가 기다려주지 않아 아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코엘류 감독은 성적 부진에 따른 사퇴라는 시각을 의식한 듯, "내가 부임했을 때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9위였고, 지금은 21위다. 별 차이가 없다"고 반박한 뒤 자신이 그 동안 이뤄낸 동아시아컵 대회 우승, 2006년 월드컵지역 예선 조 1위 등을 열거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기술위원회를 겨냥, "성인대표팀은 각급 대표팀 피라미드의 꼭지점이므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데도 기술위는 각급 대회별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코엘류 감독은 "기술위가 당장 올림픽 대표팀의 본선 진출에만 목표를 두고 성인 대표팀의 아시안컵 우승은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섭섭했다"며 "이 같은 태도는 성인 대표팀 안에서 선수 및 코칭 스태프, 감독간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코엘류 감독은 차기 감독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그 동안 내가 충분하게 받지 못했던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히딩크도 처음 부임해서 고생했지만 협회가 전폭 지원해서 좋은 성적을 얻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 새 사령탑 인선 관심/ 기술위 "5월말까지 마무리"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19일 사퇴함에 따라 향후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끌어갈 새 사령탑 인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진국 기술위원장은 이날 "28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은 박성화 수석코치대행체제로 치를 것"이라며 "월드컵예선과 아시안컵 등을 감안할 때 5월말까지는 선임 작업을 마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술위는 5월초 이사회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어 "외국인 감독 선임을 원칙으로 히딩크 감독의 장점과 코엘류 감독의 단점을 염두에 두고 선정할 방침"이라며 "신임 감독은 2006독일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 기술위가 유임되든, 신임 기술위가 구성되든 5월초까지 원하는 대표팀 감독의 자격 조건을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올해 유로2004에서 히딩크 전 감독처럼 뛰어난 감독이 나타날 것"이라며 "유로2004가 대표팀 감독 선정의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라고 설명, 후임 감독 인선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축구인들은 새 사령탑은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Charisma)와 자신만의 컬러(Color), 그리고 자신감(Confidence) 등 '3C'를 갖춘 지도자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코엘류가 약팀을 지도해본 경험이 없고 좋은 팀에서 훌륭한 선수들만을 조련했던 감독이었다는 점을 감안, 명팀을 지낸 지도자보다는 이름 없는 선수들을 특색 있게 키워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한국축구에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여동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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