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던 스페인이 18일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로 확정했다. 유엔 역할 확대안을 수용하며 동맹국 붙들기에 나선 미국은 스페인 조기 철군이 다른 파병국으로까지 번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은 총선에서 이미 이라크 철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기 때문에 철군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사파테로 총리는 주권이 이양되는 6월 말까지 유엔이 이라크에서 정치·군사적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철군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날 "현 상태로 볼 때 우리 조건을 충족시키는 유엔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없다"고 조기에 결론을 내렸다.
스페인은 미국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에 이어 6번째로 많은 1,300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두고 있다. 철군에 따른 동맹군 병력 감소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에서 처음으로 이탈이 발생했다는 점이 더 부담스럽다.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반전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철군 압력도 그만큼 높아질 전망이다. 온두라스 등 스페인군 지휘 하에 있는 일부 국가들은 이미 철군 동조 입장을 밝힌 바 있어 곧 스페인군의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이미 예상했던 수순이다. 다른 파병국들이 임무 조정을 하면 된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권 이양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이라크 치안이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악재가 겹치자 내심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최근 이라크 내에서 유엔의 역할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새 유엔 결의안 채택을 추진한 것은 국내에서 철군 압력을 받고 있는 여러 파병국들에게 파병 유지의 근거를 마련해주려는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이번 스페인의 결정은 미국의 이런 전략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현실적으로는 당장 나자프를 담당하고 있는 스페인군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돼 전략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군은 나자프에 은신 중인 과격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와 대치하며 산발적인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철군 시기와 관련, 스페인측과 접촉한 이집트 외무부가 한 때 "15일 내" 철수라고 발표한 뒤 이를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전문가들은 철군 작업에만 1∼2개월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19일 스페인의 조기 철군 발표를 비난하고 호주군은 계속 이라크에 주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마크 라탐 야당 지도자는 올해 말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경우 즉시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이라며 정부의 방침을 비난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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