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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헌재결정 기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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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헌재결정 기다려야

입력
2004.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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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탄핵 철회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열린우리당은 17대 국회 개원 전에 탄핵 문제를 정치적으로 매듭짓자고 주장하며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했고,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자는 입장이다.나는 지난 3월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그리고 오늘 탄핵 철회 주장에도 반대한다. 탄핵 의결은 파행으로 치닫던 야당들이 다수의석으로 밀어부친 폭거였다. 오늘 여당의 탄핵 철회론 역시 과반수 의석에 고무되어 법 절차를 경시하는 정치만능 사고다.

대통령 탄핵은 국민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국회에서 법 절차에 따라 의결됐고, 헌법재판소에 넘겨져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치권 마음대로 탄핵을 의결했다 철회했다 한다면 국회의 권위, 헌재의 권위는 무엇이 되겠는가.

총선에서 탄핵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졌으므로 철회해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다.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을 합치면 42.9%로 열린우리당의 38.3%를 능가한다.

국회가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잘못된 의결을 할 수도 있으니 최종 판단은 헌재에 맡기자는 것이 법정신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부여한 각 국가기관의 기능을 실험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겪으며 우리가 건질 수 있는 소중한 것은 법 절차에 따라 난국을 정리하고 법의 판결에 승복하는 훈련이다.

이제 과반수 의석을 가진 여당으로 정국을 이끌어 가야 할 열린우리당의 행태는 여전히 불안하다. 김근태 의원은 총선 전 방송 토론에서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18일 방송 토론에서 송영길 의원은 같은 질문을 받고 한 술 더 떴다.

송 의원은 "상상하기 싫은 가정을 놓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헌재 재판관 9명은 국민이 뽑은 사람들이 아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그들이 심판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의 말인지, 화염병을 손에 든 운동권 학생들의 주장인지 귀를 의심할 만하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는다. 국민이 뽑은 의원 중 3분의 2가 찬성하여 가결된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 뜻이 아니므로' 철회해야 하고, 헌재가 만일 불리한 결정을 할 경우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재판관들의 판결이므로' 승복 안 할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서운 생각이다.

이번에도 '말 실수'라고 변명할 셈인가. 말 실수는 노무현 대통령 한 사람만으로도 혼란스러운데, 여당 사람들까지 말실수가 잦으니 시비가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말이 어디서 나오는가. 말은 그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다.

한나라당은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이 납득할만한 사과를 하면 탄핵을 철회하자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는 말이나 "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을 철회할 수 있다"는 말이나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사과에 따라 좌우될 만큼 탄핵이 가벼운 일인가. 탄핵을 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여 나라를 이런 혼란에 빠트렸는가.

16대 국회에서 탄핵을 의결했으니 결자해지로 다시 탄핵 철회를 의결하라는 여당의 주장은 항복문서에 조인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탄핵을 주도했던 대다수의 야당 의원들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거나 낙선함으로써 이미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 여당이 왜 다시 항복문서까지 받겠다는 건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갖자마자 탄핵철회를 들고 나온 것은 실망스럽다. 헌재의 조속한 결정으로 비상사태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과 탄핵 철회론은 다르다. 탄핵을 의결한 측이나 탄핵 당한 측이나 겸허한 자세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헌재 판결이 최종 결정이다. "헌재 재판관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들이 아니다"는 식의 망발이 여당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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