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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박우찬씨 KIST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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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박우찬씨 KIST 강연

입력
2004.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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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를 재현 또는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재주, 또는 기예.''어떤 영역의 대상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계통적으로 연구하는 활동.'

전자는 미술, 후자는 과학에 대한 정의다. 도저히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영역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9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강연이 열렸다. 미술평론가 박우찬씨가 마련한 특별강연의 제목은 '과학, 미술을 만나다'. 그는 "원근법부터 최근 가상현실까지, 과학이 미술에 영향을 준 예는 수없이 많다"며 "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변화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미술과 과학이 가까울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보자.

과학, 미술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평면으로 이뤄진 2차원, 입체적인 3차원, 여기에 시간까지 더한 4차원…. 과학자의 연구노트에 등장할 법한 차원에 대한 고민은 미술가에게도 끊이지 않는 화두가 돼왔다. 15세기 화가들이 주로 고민했던 것은 리얼리즘, 즉 '어떻게 하면 현실과 똑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은 3차원을 회화에 표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르네상스 미술의 전기를 마련한 원근법을 발명한 이는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넬리스키였다. 원근법 발명 초기 화가들은 격자 무늬로 짜여진 그리드(grid·격자 무늬로 짜여진 도구)를 세워두고 거기에 비춰진 상을 똑같이 격자로 나누어놓은 캔버스에 옮겨 입체적인 회화를 완성했다.

리얼리즘이 미술의 가장 큰 미덕이 되면서, '화가가 훌륭하다'는 것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화폭에 옮길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됐다. 세상을 알기 위해 화가들은 자연과학에 몰두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과학에 대한 상당 수준의 지식과 관심을 지녔다고 알려진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대표작 '모나리자'의 배경이 뿌옇게 보이는 것은 그가 대기중의 수분과 공기를 연구한 후 발명한 '대기 원근법'의 결과였다. 그는 공기를 연구해 지금의 행글라이더나 헬기와 흡사한 설계도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그가 인간을 제대로 그려보겠다는 집념으로 시체 해부에 몰두했다는 증거도 그의 스케치와 메모에 남아있다. 19세기까지 이어진 리얼리즘을 뒤흔든 것은 사진의 발명이었다. 초상화와 스케치로 생계를 이어가던 화가들은 아예 사진작가로 전업하거나 새로운 형식의 미술로 눈을 돌렸다. 이는 5세기동안 이어진 지루한 리얼리즘의 지배를 깨는 인상주의 회화를 탄생시켰다.

"과학자는 최고의 잠재적 미술가"

20세기 초 피카소가 주도한 추상화는 회화에 4차원적 요소인 시간까지 더하려는 시도의 산물이었다. 동일한 시간에 물체의 3개면밖에 볼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물체의 모든 면을 동시에 그려낸 추상화의 시도는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즉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것이 아니라 합쳐진 개념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 것'을 표현한 듯 보인다. 이처럼 현대 미술에서의 가장 큰 화두는 '얼마나 잘 그리나'가 아니라 '어떻게 볼 수 있나'다. 이는 곧 '새로운 눈'을 지닌 자가 훌륭한 미술가가 될 잠재력을 지닌다는 뜻이다.

세포의 구조, 별의 운동, 기계의 작동 원리 같이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을 전자현미경과 천체망원경 같은 최첨단 장비로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바로 과학자다. 박씨는 강연에서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미세 미술(micro art)'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어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힌 미술가들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공계학생에게 수학과 과학만이 아닌, 예술적 소양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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