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십시오. 용서는 사람을 정화시키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지난해 12월 강원도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 법정(法頂·72)스님이 칩거 4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대중법회를 가졌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겠다며, 10년째 이끌던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회주(會主·법회 주관 스님)와 길상사 회주 자리를 동시에 내놓고 행선지도 밝히지 않은 채 서울을 떠나면서 "다만 봄, 가을 두 차례 법회를 갖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킨 것이다.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길상사 지장전 건립 착공식을 겸해 열린 이날 법회에는 1,000여명의 불자가 극락전 앞마당을 가득 메운 채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마당에 화사하게 핀 꽃들을 가리키며 "꽃은 가까이 보아야 아름다운 것과 떨어져 보아야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말문을 연 뒤 곧바로 그것을 사람으로 바꾸었다. "멀리서 보면 훌륭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실망스러운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사람이라도 우리는 그를 항상 용서해야 합니다."
법정 스님이 생각하는 용서는 허물을 감싸고 관용하는,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이다. 스님은 중국 초나라 때 잘못을 저지른 한 신하가 왕의 용서로 벌을 면한 뒤, 진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나라를 구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용서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살릴 정도로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 색출을 핑계로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언젠가 그 과보(果報)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법정 스님은 또 "남의 허물은 보지 말고 나의 허물만 보라"는 법구경의 말씀을 인용해 "허물을 낱낱이 들추면 아물려는 상처가 덧나고 원한만 사게 된다"고 역설했다. '이웃의 잘못을 들추면 그 때마다 하느님이 나의 잘못을 들추고, 이웃의 잘못을 덮어주면 하느님은 그때마다 나의 잘못도 덮어준다'는 말을 인용해 "용서가 있는 곳에 부처님이 함께 한다"고 말했다.
"허물을 추궁하는 것은 업을 짓는 일이기 때문에, 그 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용서하고 죽기 전에 맺힌 것을 풀어야 합니다. 맺힌 것을 풀려면 상대를 용서해야 하는데 인생에서 용서하지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맺힌 것을 풀지 못하면 그것이 다음 생애에까지 따라 옵니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극락전과 앞마당을 가득 메운 불자들에게 "맺힌 것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모두 풀어라"면서 "나머지 이야기는 눈부시게 피어나는 나무에게 물어보라"는 화두를 던지며 법문을 마쳤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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