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이 6월 30일 주권 이양 후 이라크를 통치할 이라크 임시정부를 유엔 주도로 구성하고 유엔에 이라크 문제 처리과정의 중심적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6일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으며, 양국 언론들은 이번 회담이 이라크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회담 후 “유엔은 이라크 민주화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향후 이를 가능케 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임시정부 구성안을 제안했던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 특사의 제안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유엔이 현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를 해체한 후 직접 임시정부 수반을 임명하는 등 임시정부 구성을 주도한다는 ‘브라히미 구상’의 수용을 뜻한다.
부시 대통령은 6월 말 주권이양 후에도 미군의 지휘를 받는 기존 연합군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 뉴욕타임스는 “1년여 동안 유엔을 무시해온 부시 대통령이 유엔의 도움 없이는 이라크 상황을 개선할 희망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현재로서는 총론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영국의 BBC 방송은 “이번 회담은 이라크 및 중동정책에서 수세에 몰린 부시 대통령이 영국으로부터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고 이라크 문제에서는 부시가 영국의 유엔 역할 강화론을 지지한 모양새”라며 “유엔 강화론에 관한 합의는 아직은 총론적 수준이어서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미ㆍ영의 이번 합의로 유엔 안보리에서 새 결의안이 마련될 공간은 넓어졌지만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협조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프랑스 등은 안보리에서의 새 결의안이 마련되려면 ‘원점에서’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미ㆍ영의 기득권 포기를 압박해왔다. 이라크 내 미국의 영구기지 건설, 이라크 석유 지배권 등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강대국간 동의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 한 현 연합군에 국제법적인 합법성을 더해 주는 미국의 유엔 중심론 및 새 안보리 결의안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브라히미 구상-유엔이 임시정부 수반까지 임명케
브라히미 구상이란 올초 유엔 사무총장 특사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전 알제리 외무장관 라크다르 브라히미가 2월말 마련한 이라크 임시정부 수립 구상을 말한다. 브라히미는 당시 이라크 각 종파 지도자와 미군정 관계자들을 면담한 뒤 미국의 구상과 배치되는 임시정부 수립안을 내놓았다.
브라히미는 코커스(당원대회) 방식으로 대의기구를 구성하고, 현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를 확대해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는 미국의 안이 이라크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면서 IGC 해체 후 유엔이 직접 임시정부 구성을 관장하는 대안을 밝혔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연합군은 미군의 지휘아래 공식 정부가 탄생되기 전까지 주둔한다.
브라히미는 이라크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임시정부 대통령을, 수니파와 쿠르드족이 각각 1명씩의 부통령을 맡는 권력구조를 제안했고, 유엔이 미국과 이라크 지도자와의 협의를 거쳐 대통령과 부통령, 총리 등을 직접 지명하도록 촉구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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