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 커닝햄 무용단의 두 번째 내한공연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됐다. 공주를 배반하는 왕자 이야기도,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나 춤꾼의 감성도,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특별한 공감대도 없었다. 줄거리 전달이나 교감에 익숙한 관객들은 커닝햄의 작품이 무의미한 동작 나열에 불과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그는 어떤 이유로 '20세기 10대 예술가'에 포함되었을까.현대무용의 대가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원이었던 그는 스승이 강조했던 진한 감정 표현을 멀리하고, 단지 인체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발견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1953년 이후 가장 철학적인 안무가로 군림하게 되었다. 안무자의 감정을 차단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져 동작의 순서를 정하고, 멜로디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음악을 듣지 않고 움직임을 구성했다. 등장인원수와 공간배치 조율에서는 수학의 확률 공식을 사용했고, 동작 개발을 위해 컴퓨터 공간의 가상인체도 활용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2003년작 '분리된 양면'(Split Sides)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안무, 음악, 조명, 의상, 무대 세트가 모두 2개씩 준비된 상태에서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작품이 즉석에서 편집되었다. 현대무용가 박진수 등이 주사위를 던진 15일에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먼저,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나중에 공연되었다. 각 장르의 예술가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업해서 무대에서 처음 만난다는 사실을 알면 우연성의 묘미를 더욱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커닝햄의 작품은 기억하고 반추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안무 방식의 실험성을 함께 즐기는 것이 최선의 감상법이다. 음악과 동작과 배경이 우연히도 잘 맞으면 기뻐하며 신기해야 할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 주사위나 수식을 동원했을지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를 더해준다.
'무용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체를 통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커닝햄에게 그의 신체는 사상과 감정표현의 도구일 수가 없다. 표현의 매체라고 해도 결과는 같다. 커닝햄에 따르면, 서로 다른 몸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그 순간의 활력을 공유하면 훌륭한 무용 감상이 된다. 그의 주장은 정말 독특한 발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독보적인 무용철학이다. 이 독특한 시각 때문에 커닝햄은 무용사상 가장 위대한 개혁가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머스 커닝햄 무용단은 오늘(17일) 저녁 6시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번 더 공연한다. 16일로 만 85세가 된 커닝햄은 갑자기 관절염 수술을 받느라 아쉽게도 한국에 오지 못했다.
/문애령·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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