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이야기/세스 노테봄 지음·김용주 옮김 이레 발행책장이가 고른 책이라. 그렇다면 비록 삼류라 한들 명색은 편집자이니, 내용 못지않게 격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춘 책을 골라야 할 터이다. 내 눈의 들보는 못 보아도 다른 사람 눈의 티는 잘 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직업병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만드는 책마다 꼬박꼬박 오자 한둘은 덤으로 얹어주는 주제에 남이 만든 책을 읽을 때는 어색한 문장 하나에 걸려서 책장을 못 넘기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거슬리는 문장이 종종 눈에 뜨이고, 현학적이라 할 정도로 많은 작품과 인물이 인용되는데 비해 역주도 충실하다고 보기 어렵다. 앞 표지뿐 아니라 뒤 표지, 심지어 본문 홀수 쪽마다 'The Following Story'라는 영어 제목이 자리 잡고 앉은 까닭도 도무지 알 수 없다. 책등이 한쪽으로 쏠린 것, 출판사 로고가 깨진 것에도 괜히 마음이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이토록 흥미롭게 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주인공은 "자신이 죽은 것 같은 우스꽝스런 느낌"이 든다. 분명 암스테르담의 자기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포르투갈의 호텔에 누워 있다. "죽음은 무(無)이고, 죽으면 모든 사고가 멈춘다고 배웠는데" 여전히 수많은 기억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걸을 수도 두리번거릴 수도 있으니 죽은 건 아니란다. 어찌 한눈 팔 엄두를 내랴.
"마침내 현실이 꿈을 닮게 된" 삶의 마지막 2초에 대한 이야기라는 발상도 매력적이고, 이 작품의 열쇠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비롯하여 곳곳에 스며 있는 고전에 대한 열정과 인문학적 지식은 에코나 쿤데라 못지않은 지적인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작가의 눈길은 집요하고 신랄하나, 주인공의 내밀한 독백은 모디아노 만큼이나 섬세하게 우리 존재의 심연을 흔든다.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항해하는 마지막 순간은 경이롭고 가슴 저미면서도 왠지 위안이 된다. 죽음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찬찬히 성찰하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신비로운 정신적 노력"을 하는 것이라면 정말 좋겠다. 우리 삶에도 그렇게 "계속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해마다 네덜란드어 권 노벨상 후보로 언급된다는 저자의 이름은 'Cees Nooteboom'이다. 이 책에서는 '세스 노테봄'이고, 다른 책에서는 '체스 노터봄'이고, 또 다른 책에서는 '께이스 노오떠봄'이다. 하나는 독일어로,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어로 쓰인 책을 번역하였다. /최정선 보림출판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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