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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낭만파-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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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낭만파-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입력
200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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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이네 지음·정용환 옮김 한길사 발행·2만원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는 흔히 낭만주의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연애편지에 써먹기 좋은 달콤한 사랑의 시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그는 빼어난 산문가이자 진보적 사상가이기도 했다. 혁명을 옹호하는 그의 예술적 투쟁은 문학과 정치의 반동적 흐름을 결코 용납하지 않고 풍자의 칼날을 휘둘렀다.

하이네의 산문 '낭만파'는 독일 낭만주의를 지나치게 낭만적인 눈길로 바라보는 경향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괴테가 죽은 이듬해인 1833년, 프랑스의 한 문학잡지에 발표한 이 글에서 그는 당시 프랑스인들을 매혹시킨 독일 낭만주의의 관념성과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실은 수구 반동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음을 폭로한다. 초기에 자유주의적 면모를 보이던 독일 낭만주의가 반(反)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급속히 퇴행, 중세의 억압적인 봉건 질서를 거룩한 종교적 환상으로 미화하고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자극하는 쪽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비평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나폴레옹 몰락 이후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가 메테르니히의 비서로 헌신했다. 지극히 비정치적인 것처럼 보이는 낭만주의가 더러운 정치적 속셈과 천연덕스럽게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독한, 그러나 엄정한 아이러니다.

하이네는 그러한 변절이 예술이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오직 예술로만 존재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작가는 현실의 땅을 떠나지 않는 한에서만 강하며, 열광에 취해 푸른 공기 속을 떠돌아 다니면 곧 무력해진다"는 그의 지적은 무중력 상태에서 몽유병자처럼 떠도는 예술이 필연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을 경고한다. 이러한 비판은 하이네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문학과 예술의 상황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이네는 이 책에서 중세부터 낭만주의에 이르는 문학사를 훑은 다음 낭만주의 분석과 비판으로 넘어간다. 초기 낭만주의자인 슐레겔 형제, 티크, 노발리스, 셸링, 브렌타노, 아르님, 베르너, 푸케, 울란트 등 하이네 당대의 낭만주의 작가들이 차례로 심판대에 오른다. 괴테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하이네는 괴테의 걸작을 찬양하면서도, 그 완전무결한 작품들이 지닌 '부동성'과 '냉기'가 '살아서 요동치는 뜨거운 삶'과는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고 신성(神性)과 돌 사이의 불행한 혼혈아'라고 비판한다.

이 책에서 만나는 하이네는 '사랑의 시인'의 온유함 대신 냉철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더없이 가혹한 풍자와 적을 단숨에 쓰러뜨리는 치명적인 조롱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이네의 동시대 인물들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그 통렬함에 짜릿한 쾌감마저 느끼며 환호하거나, 격분한 나머지 새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거나.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리고 그때든 지금이든, 시인다운 상상력과 눈부신 문장으로 가득 찬 이 책의 압도적인 자장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1835년 12월 이 책이 독일에서 출판된 지 한 달도 못 되어 독일 연방회의는 하이네 작품에 대한 금지령을 내렸고, 프랑스에 머물던 하이네는 별 수 없이 망명객이 되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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