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17대 국회의 색깔과 운영 등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대사건이다. 진보정당이 단순히 제도정치권에 진입하는 수준을 넘어 3당을 차지한 상황은 정당간 역학 구도는 물론 정치 문화 자체에 변화를 몰고 올 중요한 변수이다. 또 민주노동당의 의정 활동 중심이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 놓여질 게 확실해 기득권층과의 대립 가능성 등 사회적 파장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우선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보수 정당 일색의 한국 정당 구조에 새로운 이념적 색채를 덧씌울 전망이다. 선거 기간 언론이 분석한 정당 이념 스펙트럼에서 민주노동당은 보수 성향의 다른 당들과 달리 개혁·진보 성향을 분명히 나타냈다. 정치학자들은 "한국 정당 정치의 지평이 넓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보수 정당들은 민주노동당의 선명한 개혁·진보 색채에 적지 않은 자극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혁을 화두로 삼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우리 정당구조가 보수와 혁신 구도로 재편되는데 이번 민노당의 국회 진출이 기폭제가 되리라는 시각도 있다.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민주노동당은 민중연대 등 재야 단체와 연계돼 있고 각종 사회 쟁점, 특히 노사가 대립하는 사안에 적극 개입해 왔다. 민노당이 국회에서 노동자를 적극 대변하게 되면 다른 한 축인 재계측, 예를 들어 전경련 경총 등도 국회에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국회 안에서 '노사'의 이익이 강하게 충돌할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밖에 민노당 의원들은 권위와 명예의 상징으로 규정돼 온 국회의원상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 의원 당선자들은 벌써부터 "수염을 기르고 도포를 입겠다"고 말하는 등 파격적인 '탈 권위'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각종 사회쟁점에서 노동자 편향적이고 강성 일변도의 행태만 보인다면 기존 정치권으로부터 고립돼 결국 국민으로부터도 외면당할 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포용과 타협 쪽으로의 변화도 함께 꾀해야 보다 넓게 국민 속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 진보정당史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이 현실이 됐다. 1960년 혁신 정당들이 8석을 차지한 후 44년만이고, 2000년 진보정당의 깃발을 올린 이래 4년 만이다. 한국정치사의 첫 진보정당은 조봉암이 주도한 진보당이다. 1956년 11월 창당한 진보당은 58년 조봉암이 간첩 혐의로 붙잡히자 곧 무너졌다.
60년 4·19 혁명이후엔 한국사회당 사회혁신당 통일사회당 등 다양한 혁신정당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고질적인 분파간 갈등과 명망가 중심의 정치로 자리를 잡지 못하다 5·16 이후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통일혁명당(1968), 인민혁명당(1964) 등이 지하에서 외연 확장을 시도했으나 간첩으로 몰리는 등 고난을 당했다.
80년대까지는 진보정당의 암흑기였다. 통일사회당, 사회민주당 등이 진보정당을 자처했지만 '독재 정권의 장식품'이라는 혹평을 받다 자취를 감췄다. 87년 6월 항쟁을 발판으로 88년 총선에 참여한 민중의 당은 4.3%를 득표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줬다. 민중당은 창당 이듬해인 91년 지방선거에서 13.3%를 득표, 진보 정당사에 큰 획을 그었다. 현재의 민노당은 2000년 국민승리21을 기반으로 출범했다. 권영길 현 대표는 국민승리21과 민노당 후보로 두 번 대선에 출마했고 이번에 국회진출 꿈까지 이뤘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 민노당 반응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는 15일 오후6시 방송사들의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당직자들은 특히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선전해 원내 3당 가능성이 점쳐지자 '3당'을 연호하며 기뻐했다. 밤 10시께 권영길 대표와 조승수(울산 북구)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당사 안팎은 축제 분위기 그 자체였다.
당사 5층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당직자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의도 당사 밖에는 지지자 2,000여명이 모여 폭죽을 터뜨리며 흥겹게 어울렸다. 당직자들은 최초의 원내 진출과 두 자릿수 의석 확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정당지지율이 얼마나 나올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앞서 천영세 선대위원장과 노회찬 선대본부장을 비롯한 지도부와 비례대표 후보 전원은 이날 오후 상황실에 모여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후 처음으로 별도의 선거상황실을 마련, 대형 멀티비전 3대를 설치했다. 권 대표는 창원 지역구 사무실에서 당직자들과 최초의 지역구 당선을 자축했다.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후보에 대한 격려의 의미로 장미꽃 139송이를 전국 지도의 모든 지역구에 달았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재계 "쇼크"/ "민노당, 勞이익만 대변땐 투자위축"
재계가 민주노동당 '쇼크'(충격)에 빠졌다.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예상과는 달리 9석을 확보, 민주당과 함께 제3당으로 올라설 것으로 확실시됨에 따라 자칫 노사관계 및 기업지배구조 문제 등 경영전반에 걸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진보정당으론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에 대해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이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사측보다는 노조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점이 재계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민노당이 주장하고 있는 '주 40시간 및 주 5일 근무 전면 실시'등은 경기 침체로 허덕이고 있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B그룹 관계자는 "최저임금을 2007년까지 평균 임금의 50%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과 노동자의 경영참가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도 재계로선 부담스러운 요구"라고 밝혔다.
기업들이 특히 걱정하는 것은 민노당의 의석 수가 절대 규모에서 많지는 않지만 그 효과는 제1당에 못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C기업 관계자는 "민노당 의원들이 국회 환경노동·보건복지·재경상임위원회에 들어가 반 기업 성격의 법안을 발의하고 이를 열린우리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지지할 경우 경영에 부담을 주는 법안들이 대거 법제화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내달부터 본격화할 올해 임·단협에서 민노당이 노조측에 힘을 실어줄 경우 춘투가 격화할 것이라는 점도 재계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재계가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 및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노동계의 입김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측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노동자의 경영참여 확대를 통해 재벌을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민노당 공약은 재벌들에게는 '선전포고'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D그룹 관계자는 "수습국면을 보였던 대선자금 문제와 부의 편법 상속 및 증여 문제 등이 다시 불거질 경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힘들어지고, 반시장적인 정책이 양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노골적인 불만도 표출하고 있다. E기업 관계자는 "민노당이 기존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할 경우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민노당도 이제 국회 원내에 진출한 만큼 과격한 노동운동을 지양하고,노사화합을 바탕으로 투자확대와 국민소득 2만달러 조기 달성에 협조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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