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바람이 입맛까지 앗아갔는지 식탁 앞에 앉아도 영 흥이 나지 않는다. 춘곤증이나 피로 탓만 하지 말고 예쁜 유리 그릇으로 가족의 입맛을 돋워보자.촌스럽다고 여겨져 온 원색적이고 화려한 색과 무늬가 패션 및 인테리어의 새로운 유행으로 떠올랐다. 식기도 예외는 아닌 듯 백화점과 인테리어 전문 매장에 장식된 그릇도 색색가지 빛깔을 입고 맵시를 뽐낸다.
이 중에서도 ‘유리는 투명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알록달록한 유리 식기가 부쩍 눈에 띈다. 무난함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겨졌던 밥상, 올 봄에는 다양한 색상의 유리 소재 식기로 과감하게 꾸며보자. 보고 느끼는 상쾌함과 재미가 지친 입맛을 산뜻하게 되살려줄 것이다.
LG데코빌 송미숙 디자이너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담는 그릇에 따라 맛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처럼 철마다 식탁 분위기를 바꿔주는 것은 생활에 활력을 준다”며 “올해 유행은 투명한 유리에 다양한 색상을 입힌 그릇들”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무라노섬에서 온 색유리
색유리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 유럽으로 여행가면 잊지않고 기념품으로 한두점씩 사오던 무라노 유리가 인테리어 매장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무라노 유리 제품은 대대손손 기술을 전수 받은 장인들이 운영하는 100여개의 공방에서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특유의 소재 배합으로 유리보다 강하고 크리스털보다는 부드러운 독특한 질감을 지니는 것이 특징. 섭씨 1,400도의 불에서 녹인 유리를 일일이 손으로 빚어 만들기 때문에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그릇’을 갖는다는 자부심도 누릴 수 있다.
무라노 유리는 여러가지 화학 물질을 넣어 색상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망간을 넣으면 짙은 자주빛이, 코발트를 넣으면 밝은 푸른 빛이 나는데 일반 염료로 나타내기 힘든 환상적인 색상이 눈을 유혹한다. 와인으로 유명한 나라인 만큼 적포도주, 백포도주 등 포도주 빛깔과의 조화를 고려한 종류별 와인 잔이 특히 많다.
무라노 유리가 유명해지면서 모조품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유리면서도 색상을 나타내는 부분이 불투명해야 진품이며 모양이 투박해보이는 것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또한 무라노 유리는 두께가 얇고 많은 종류의 색상이 들어갈수록 가치가 높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진품에는 무라노 유리 장인 연합인 ‘프로모 베트로(promo vetro)’ 로고가 붙어 있다.
‘무라노 모레티(www.glassworld.co.kr)’ 황병운 대표는 “무라노 유리로 만든 식기는 강도가 높아 실생활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장식품으로도 손상이 없다”며 “식기 외에 꽃병이나 액자 등 다른 소품도 많아 함께 식탁을 장식하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와인잔은 개당 5만~10만원, 그릇은 5만원부터 30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자연에서 따온 빛깔, 북유럽 스타일
어떤 색상이라도 밝고 선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유리의 장점. 최근에는 북유럽 가구의 유행을 등에 업고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북유럽 스타일의 유리 식기들도 인기를 끈다. 푸른 벌판을 연상시키는 편안한 초록, 하늘에서 따온 맑은 파랑, 태양에서 따온 눈부신 빨강 등 그 동안 식탁에서 배척됐던 선명한 색상을 과감히 쓴 것이 특징이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김희정씨는 “이탈리아풍이 화려하고 섹시한 젊은 여성을 연상케 한다면 북유럽 스타일은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에 비유된다”며 “화려한 색상을 쓰더라도 채도를 한톤 낮춰 음식을 맛깔스럽게 살려주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음식을 담는 부분이 어디인지 잘 모를 정도로 추상적인 디자인이 많으면서도 색상은 상대적으로 무난해 색다른 식기를 원하면서도 지나치게 화려한 유리 식기가 부담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북유럽에서 수입된 식기들은 자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지역의 특성답게 대부분 재생유리를 사용해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도 매력. 개당 2만~8만원선이며 세트로 구입하면 더욱 저렴하다.
보색 소품으로 포인트, 식탁보는 심플하게
화려한 유리 식기를 쓸 때 가장 걸리는 부분은 이전에 쓰던 식기와의 조화다. 도자기나 플라스틱 그릇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 유리 그릇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테리어 종합 매장 ‘태홈’ 노승욱 이사는 “색상이 화려한 유리 식기는 ‘믹스&매치(mix&matchㆍ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섞어 연출하는 방법)’가 어렵다”며 “크기가 작은 그릇일수록 처음 구입할 때 세트로 준비해두어야 식탁을 꾸미기 편하다”고 말했다.
유리 식기와 어울리는 소품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접시에 흰 조약돌이나 일본 요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 받침 등을 깔고 요리를 담으면 한층 자연스럽다. 금속 젓가락은 유리와 어울리지 않으므로 나무 젓가락을 쓰되 그릇과 보색 관계인 색을 써서 액센트를 주는 것이 연출 포인트. 빨강_초록, 파랑_노랑, 보라_연두 등이 보색관계로 함께 매치하면 보기에 산뜻한 것은 물론 나른한 신경을 자극해 지친 입맛까지 되살려준다.
색을 입힌 유리 식기로 식탁을 장식할 때 식탁보는 최대한 깔끔한 것을 쓰도록 한다. 스타일리스트 김희정씨는 “식탁을 꾸미는 식기나 소품 종류가 보통 5~6가지라고 할 때 이 중 한두 개는 단조로운 무채색을 써야 식탁이 복잡해보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화려한 잔에 심플한 받침을 대거나 깔끔한 흰색 꽃으로 식탁을 장식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유리 식기에 담는 음식의 색깔은 그릇과 너무 다르지 않게 해야 좋다. 샐러드, 파스타, 초밥처럼 색이 선명하면서도 여러 색상이 섞이지 않은 요리가 쉽게 어울린다. 반대로 뜨거운 국물이 많은 찌개나 국, 스프 등은 유리에 김을 서리게 해 지저분해 보이므로 피한다.
유리 그릇에 음식물 기름기가 남아 반짝임이 약해졌을 때는 감자 껍질로 문지르거나 레몬 조각에 소금을 묻혀 닦으면 새것처럼 말끔해진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