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수 확보라는 압승으로 끝났다. 우리당이 1988년 13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대야소(與大野小) 국회 구성에 성공한 데는 선거를 관통한 탄핵 역풍이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야당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우리당 지지로 연결된 것이다. 탄풍(彈風)은 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발언'과 야당의 '거여(巨與) 견제론'에 막혀 잠시 주춤했지만, 선거 막판 의원직을 포기한 정 의장의 승부 수로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는 게 여론조사 기관의 분석이다. 우리당의 국회 장악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를 내세워 영남을 재결집시킴으로써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차떼기 당'의 오명에다 탄핵이 겹치면서 선거 초반 80석도 장담하지 못했던 상황에 비춰보면 개헌저지선(100석)을 여유 있게 넘긴 이 정도의 성과는 '대 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자연 박 대표는 당내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상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영·호남의 표 쏠림을 비롯한 '동야서여(東野西與)' 현상이 지난 대선에 이어 재현돼 '전국 정당'의 등장이 또다시 무산된 것은 지역주의 타파가 여전히 요원함을 말해준다.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첫 원내 진출도 이번 총선의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이는 국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동시에 국회의 새로운 관행과 제도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내교섭 단체(20석) 구성에 실패하고 주저앉은 민주당과, 충청권에서조차 맹주자리를 우리당에 빼앗긴 자민련은 진로설정을 두고 한동안 극심한 혼란과 진통을 겪게 될 것 같다. 정치권 일각에는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구심력에 노출돼 공중분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우리당이 주도할 향후 정국과 국정은 일대 변화의 회오리를 예고하고 있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견제에 막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각 분야의 '개혁 프로그램'을 비로소 밀어붙일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개원과 함께 보수편향을 보이던 기존 정책의 틀이 상당부분 깨질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특히 한나라당과의 최대 갈등 요인이던 대미, 대북 관계에서의 변화향배가 주목된다. 당장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부터 궤도가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거센 저항도 예상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선명한 정책노선상 차이와 감정의 골은 양측의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각론에서 다양한 입장차이를 갖고 있는 우리당 구성원들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경우 정국은 총체적 대결양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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