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화가 고 박생광(朴生光·1904∼1985·사진)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가객(歌客)이 있다면 화객(畵客)도 있다. 해방 이후 한국화단이 백안시 하던 채색화가로 평생을 야인처럼 떠돌다, 생의 말년인 팔순이 가까워서야 우리의 전통색채를 되살리며 미술계의 중심에 홀연히 나타났던 박생광은 화객이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C는 박 화백의 무속화(巫俗畵) 등 50여 점을 전시하는 '色(색), 그대로 박생광' 전을 8일 개막, 6월12일까지 열고 있다. 경기 용인 이영미술관도 9∼11월 대규모 회고전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평론가 이경성씨가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송태호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김이환 이영미술관장 등이 박 화백의 초기작까지 총망라한 작품들을 모으고 있다. 제1회 박생광 학술논문상도 6월30일까지 접수 중이다.
한 개인 컬렉터의 소장품으로 마련한 '색, 그대로 박생광' 전의 전시작들은 1980년대 초 박 화백이 생의 마감을 앞두고 꽃피운 한국적 색채감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대로'는 박 화백의 아호. '무속' '무당' '열반' '장승' '단청' 등의 제목을 단 이 시기 그의 작품들에서는 토속적, 주술적 기운이 물씬 뿜어져 나온다. 우리 민족의 삶을 떠받쳐온 기층문화로서의 무속, 불교적 이미지들이 원초적이면서도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형상화됐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압도적인 색채감이다. 무당, 불상 등의 형상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그 주위에 굵은 테두리 선을 두르는 원시적인 묘법, 화려한 황·청·백·적·흑의 오방색이 내뿜는 기운은 만년의 박생광이 이룩한 득의의 영역이었다. 일본화풍의 영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묵 중심의 문인화만을 정통으로 보거나, 추상 혹은 단색조 모노크롬이 휩쓸던 당시 화단에 전래 무속화와 불화, 민화 그리고 단청과 여인네들의 저고리, 노리개, 자수 등에서 그가 찾아낸 화려하면서도 질박한 전통 색채는 충격이었다.
박 화백은 190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농고를 거쳐 1926년 일본 교토(京都)시립회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잇달아 입선하고,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문학수 등과 '자유미술가협회' 등 전위적 미술가단체에 참가해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그러나 해방 이후 진주에 정착해 야인생활에 들어간다. 68∼74년 홍익대에서 강의한 것 정도를 빼고는 중앙화단에서 늘 멀리 있었다. 74년 일본으로 갔다 3년 뒤 귀국하면서 그는 '내고(乃古)'라는 아호를 '그대로'라는 순수한 한글식 표기로 바꾸고, 작품에 쓰던 연도 표기도 서기에서 단기로 바꾸었다. 일본화풍에 대한 의도적인 단절을 그것으로 표현한 셈이었다. 그리고 81년 백상기념관에서 연 개인전은 소재주의, 일본화풍 작가라는 평가를 불식시키고 우리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새롭게 복원시킨 작가라는 평가를 받게 한 전환점이 됐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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