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었다. 그 즈음 나는 우리 전통문화를 되새기는 계간 잡지 '디새집'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폐간됐지만 편집인으로 책을 만들던 순간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책을 만드는 일이야 평범한 일일 테지만 그 책을 아끼던 많은 분들의 모습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창간호가 발간되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소문은 다양했다. 그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어느 대학 교수는 30권을 정기구독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는가 하면 일본 대학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두 권째 책이 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무실로 날아 든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보낸 사람 난이 빈 편지를 뜯어 보니 삐뚤 빼뚤 쓴 글씨로 '첫 권은 너무 반가워 하루에 모두 읽었으나 두 번째 책은 하루에 한 페이지씩 아껴 읽는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만드느라 수고가 많으니 편집부 사람들 모두 삼계탕이라도 사 먹으라며 우체국 소액환이 같이 들어 있었다.
요즈음과 같은 온라인 시대에 소액환도 그렇거니와 한 권에 2만2,000원이어서 비싸기로 소문난 잡지 5년 치를 정기구독하고도 남을 만한 거금이 들어 있었으니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겉에는 물론 안에도 발신자의 흔적은 하나도 남기지 않은 그 편지를 읽으며 나는 참 오랜만에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기어코 찾아 낸 흔적이라고는 편지에서 향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편지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잔잔하면서도 큰 목소리로 일러 주는 듯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쓰지 않았지만 아주 강하게 울림이 전해졌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요즘 다시 잡지를 준비하며 짬 날 때마다 그 편지를 되새기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까지도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글 한 줄을 쓰거나 사진 한 장을 찍고 발표하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묵히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것들만 판을 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또한 엄연히 이 사회를 꾸려 가는 건강한 요소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그 편지는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잠시 바람이 불어 흔들리면 다시 그 편지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 편지는 아주 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잡지를 다시 세상에 내놓을 준비를 하는 내게 그 어떤 충고나 도움보다도 큰 힘이 된다.
/이지누 사진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