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방송사들은 선거 방송의 하이라이트인 출구조사와 결과 예측에서 16대 총선 때와 같은 망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해 있을 것이다. 성급한 예측으로 당장 시청률 몇 %를 얻는 대신 방송의 생명인 신뢰를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더불어 선거가 마무리되면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전례 없이 격한 논란에 휩싸였던 방송의 역할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기회부터 갖기를 바란다.이번 총선 관련방송의 화두는 '공정성 시비'와 '이미지 정치'였다.
공정성은 언론이 전통적으로 옹호해온 가치 중의 하나다. 방송사들의 선거보도 준칙에도 공정성이 필수항목으로 들어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보도에서 이를 준칙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편파 시비를 부른 탄핵 관련방송을 보자. 편파라고 주장하는 측은 방송사가 특정 보도 안에서 중립적인 시각을 갖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말하자면 단기적 측면에서 양적 균형을 상실했다는 것이 편파 판정의 요지인 셈이다. 이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공정성 문제를 특정 프로그램 한 두 개를 가지고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선거기간 동안 방송사가 취한 선거보도 태도를 가지고 평가할 것인지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금까지는 주로 몇몇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논란이 일었지만,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논란은 이미지 정치다. 현대정치가 이미지 정치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대 다수의 유권자를 확보하기 위해 정당은 이념이나 지역정당에서 대중정당 또는 기획정당으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모든 계층과 연령대의 유권자에게 고르게 호소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선거전의 전형이 됐다.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이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한, 유권자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투표하기 쉽다.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에서 발생한 행태들이 이미지 정치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단순히 말하면, 탄핵 이후 감성적 판단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영상매체가 가진 매력이자 한계이다. 정치인들은 '이미지의 힘'을 통감하면서 앞 다퉈 감성적 호소로 나아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눈물, 노인폄하 발언 이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큰 절,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의 삼보일배는 이미지 정치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방송이 이미지 정치를 경계하면서도 이를 이끌었다는 데 있다.
방송은 신문과 같은 언론이지만, 신문보다 엄격한 공적 책임과 윤리를 요구 받는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으로 지상파 방송 3사가 선거보도에 있어서 특정 신문사들보다 상대적으로 공정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방송의 공정성 시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심화할 이미지 정치로부터 방송이 어떻게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것인지도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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