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장 극적인 레이스는 1911년 아문센(노르웨이)―스콧(영국)의 남극 정복 경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승부는 스콧 일행보다 한달 여 일찍 남극에 도착한 아문센 탐험대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스포츠적으로 분석하자면 감각에 의존한 스콧과 달리 아문센의 치밀한 준비성이 승인이었다.그러나 이듬해 11월 탐험대의 시체가 잠들어 있던 텐트 속에서 스콧의 일기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극심한 남극의 겨울 추위와 식량이 고갈된 엄혹한 조건에서 스콧 일행의 초인적인 사투가 문학적으로 표현된 일기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이들의 죽음은 인간 승리의 표본으로 승화됐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스콧 탐험대는 지금까지 아문센보다 더 '아름다운 2등'으로 기억되고 있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스타는 단연 에디 에드워즈(영국)였다. 그는 스키점프 70m서 우승자인 마티 누카넨(핀란드)보다 비거리가 무려 34.5m, 점수는 142.9점이나 뒤진 '한심한' 꼴찌였다. 그러나 당시 스키점프경기를 공인하지 않았던 영국에서 혼자 배웠고, 점프하다가 턱뼈가 부숴지는 공포도 이겨내고 입문 2년 만에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는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에디는 하루 아침에 인기스타가 됐다.
"점프할 때마다 살아남을 지 두렵다"는 그의 말은 대단한 도전정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관중들은 그가 경기할 때마다 "에디"를 연호했고, 영국 언론은 재빨리 '이글(독수리) 에디'란 애칭을 부여했다. 그의 인기에는 제국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긴 경제 침체기를 맞은 영국의 국내외적 환경이 한몫 했다. 경기에 임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실패에서 긍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영국언론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에릭 무삼바니(적도 기니)가 스타로 떠올랐다. 자유형 100m에 출전한 그는 물에 빠질까 인명 구조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를 물 위에 내놓고 하는 개헤엄으로 가까스로 경기를 마쳤다. 너무도 희한한 무삼바니의 수영모습은 화제가 됐고, 그는 여기저기서 광고출연 제의를 받는 등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스콧 탐험대가 극한을 극복하려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이글 에디가 공포를 두려워 않는 모험정신으로 '아름다운 패자'로 기록됐다면 무삼바니는 도가 지나친 올림픽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꼴찌'였다.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 저널리즘이 한몫 거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다. 최근 일본에선 여덟 살 난 경주마 하루우라라가 인기절정이라고 한다. 98년 데뷔한 이 암말은 2등 4회 3등 6회를 빼고 모든 경주서 꼴찌를 했는데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씁쓸한 것은 이 말의 팬 대부분이 조기 퇴직자, 입시 실패 수험생, 도산한 사업자 등 사회의 낙오자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낙오자 신세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그 말에게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촉구하는 의미의 '하루우라라 현상'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빈부격차는 커지고, 미래의 비전은 점점 작아지는 우리 사회에서 '하루우라라 현상'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사회가 선진 사회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한계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꼴찌'가 늘어나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 아닐까.
/유승근 체육부장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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