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손호철의 정치논평]우연의 정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손호철의 정치논평]우연의 정치

입력
2004.04.13 00:00
0 0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도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카오스 이론, 나비 이론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과학은 역사에 있어서 우연성을 강조하고 우발적인 사건이 역사를 좌우한다는 우연의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역사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분석한 가상역사 연구가 서구에는 유행하고 있다.특히 한국 정치와 같이 제도화가 되지 않고 바람이 승패를 좌우하는 정치의 경우 우연성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최근의 정국을 바라보더라도 이 같은 우연의 역사, 우연의 정치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틀 뒤로 다가온 이번 총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각 정당의 정책이 아니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주도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60대 이상 노인들은 선거를 안 해도 되니 집에서 쉬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말실수라는 두 개의 우발적 사건이다.

우선 탄핵이라는 변수가 그러하다. 탄핵 전날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요구한 사과를 거부하고 강경론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언급하며 비판한 대우건설 사장이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탄핵을 강행하는 대신 노 대통령의 오만을 비판하며 이를 선거 쟁점으로 해서 선거를 치르려고 했다면 이번 총선은 지금과 전혀 다른 형국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즉 열린우리당은 완전히 위기에 몰려 죽을 쑤었을 것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사실 탄핵 이전만 해도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에게 기존 정당과의 차별화에 그리 성공하지 못한데다가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 한화갑 민주당 의원 경선자금 수사에 따른 불공정 시비 등으로 지지를 받아야 할 부산과 호남에서도 고전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노 대통령은 강경 대응을 선택해 민심 이반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미련하게도 탄핵 강행을 선택했고 이 같은 우발적 선택이 정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한나라당을 크게 앞서는 등 폭등했다. 다시 말해 우발적인 사건 덕으로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지역주의가 깨지는 기회, 나아가 영남 지역주의 덕으로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해온 냉전세력이 국회에서 쇠퇴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발전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 의도하지 않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나 탄핵 정국은 정동영 의장의 말실수라는 또 다른 우발적 사건으로 또 한 차례 격동을 겪고 있다. 즉 정 의장의 문제의 발언 이후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나라당 지지가 복원되면서 다시 과거와 같은 지역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의 반등이 정동영 의장의 말실수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체제가 출범한 것과 열린우리당이 싹쓸이를 해 거대 여당이 출현할 것이라는 거대 여당 견제론 등도 한나라당의 반등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정 의장의 문제 발언에 따른 노풍이 열린우리당에 대한 역풍에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발적 사건으로 일어났다가 우발적 사건으로 죽을 쑤고 있다고나 할까?

이제 포스트 3김 시대의 국회의 모습을 결정할 역사적인 총선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그러나 남은 이틀 동안에 또 어떤 우발적 사건이 터져 나와 총선 판도를 바꾸어 놓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정치 9단의 3김이 누누이 이야기해 왔듯이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 언제,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