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둘도 없는 바람둥이에게 여자가 생겼다. 그의 특징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달콤한 말로 유혹해 하룻밤을 보낸 후 뒤도 안돌아보고 달아나는 것. 그런데 이번 여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룻밤이 지나면 전날의 모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이기 때문이다.'총알탄 사나이3' '성질죽이기' 등을 연출한 피터 시걸 감독의 '첫 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는 이런 여자를 상대로 한 바람둥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여자가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바람에 날마다 첫 만남이다 보니 첫 키스만 무려 50번을 하게 된다. 단기기억상실증은 뇌의 측두엽을 다칠 경우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 심하면 기억 시간이 수 초에 불과할 수도 있다. '메멘토'와 '니모를 찾아서' 등에서 긴장과 웃음을 유발한 증세를 사랑의 소재로 사용한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여자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 처음에는 바람둥이에게 편했다. 그러나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면서 바람둥이 헨리(아담 샌들러)는 괴로워 한다. 연인이 된 루시(드류 배리모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다 보니, 매일 아침이면 연인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기발하고 가슴 찡한 사연을 만든다.
'펀치 드렁크 러브' 이후 진지해진 아담 샌들러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과장된 동작과 말장난을 자제하고 담백한 연기로 관객의 공감대를 끌어낸다. 혹시 경박한 코미디의 상징인 그의 이름을 보고 이 영화도 그럴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존재는 로브 슈나이더와 '반지의 제왕'에서 샘으로 알려진 숀 어스틴. 두 사람은 각각 남자의 친구와 여인의 오빠로 나와 맛깔스런 웃음을 선사한다.
사랑의 무대가 신혼여행지로 꼽히는 하와이라서 영화속 연인들이 빚어내는 사랑이야기가 더 할 수 없이 로맨틱하게 다가오는 점도 장점이다. 여기에 'Over The Rainbow' 'Every Breath You Take' 등 귀에 익은 노래들도 재미를 더하는 양념 역할을 한다. 참고로 기사를 읽고 영화를 볼 결심을 했다면,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모든 내용을 잊고 담백한 마음으로 보기 바란다. 머리로 해석하기 보다 눈으로 즐겨야 할 작품이기 때문이다. 15세. 15일 개봉.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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