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 선거 전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영·호남 지역분할 구도가 확연해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효과'에 힘입어 대구·경북(TK)을 거의 석권한 데 이어 부산·경남(PK)에서도 월등한 우위를 점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호남의 대부분 선거구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두 지역 맹주였던 김대중, 김영삼 전대통령의 퇴장과 거센 탄핵 역풍이라는 선거환경의 일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호남 지역주의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12일 정치권에서는 이를 놓고 한바탕 공방이 벌어졌다. 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여성 야당대표의 감성주의가 지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고 비난했고, 한나라당 윤여준 선대본부장은 "박 대표의 깨끗한 이미지가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것이지 지역감정을 자극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번 영·호남 분할현상은 서로가 상대 지역과 반대의 선택을 하는 견제심리, 배타의식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경희대 정하용 교수는 "한나라당이 TK출신인 박근혜 대표를 내세워 영남 정서를 자극한 게 주효하고 있다"며 " '고향사람'인 박 대표의 등장은 영남에서 자연스럽게 '반(反) 호남, 반 우리당' 기류를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호남의 우리당 지지 역시 적극적 지지라기 보다는 영남을 배경으로 한 한나라당에 대한 뿌리깊은 거부감과 이런 한나라당과 탄핵 공조를 한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비록 여야의 노골적인 지역주의 선동 언행은 전에 비해 완연히 줄어들었지만, 두 지역의 대립구도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지역주의는 현상적으로는 과거와 비슷하나, 내용적으로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맹목적 투표경향을 보였던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며 "배타적 지역정서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번에는 이념 내지 정책방향의 문제가 새로 결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보수성향이 강한 영남의 결집은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당의 노선에 대한 반감이 바탕이 되고 있다"며 "박근혜 대표는 한동안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이들 유권자를 다시 불러모으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호남에서 탄핵 역풍 때문에 민주당의 'DJ 후광 업기' 전략이 거의 먹히지 않는 것도 유권자들이 당의 노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증좌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17대 총선의 지역분할 구도는 지역주의 탈피로 가는 과도기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게 강 교수의 진단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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