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몽당연필을 만들어볼 생각을 했다. 짧은 연필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커터'라고 부르는, 장판을 자르고 도배지를 자를 때 쓰는 문방구용 칼을 보고 떠올린 생각이었다. 왠지 그걸로는 뭐든지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멀쩡한 연필 하나를 새끼손가락 길이만하게 자르고, 또 다 쓴 볼펜 껍데기를 잘라서 옛날 방식으로 몽당연필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는 동안 제법 집중이 되어 두 자루나 만들어 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가 '우리 아빠, 꽤나 심심했던 모양이다' 하는 얼굴로 싱긋이 웃으며 연필을 받아갔다.
어린 날, 나도 아버지가 처음 몽당연필을 만들어주셨다. 그러나 그때는 볼펜도 귀해 가는 대나무를 잘라서 몸통을 만들어 썼다. 마른 대나무를 쓰면 이어 붙인 자리가 시간이 지나도 단단한데, 젖은 나무를 잘라서 만들면 다음날이면 나무가 마르면서 구멍이 헐거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몽당연필을 내게 주시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글씨를 써보곤 하셨는데, 그때 쓴 글씨가 한자로 '성실'이었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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