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벌써 오십줄에 들어선 둘째 아들이 모처럼 인사 올립니다.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아버지는 생전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지요. 고된 농사를 감당하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저도 다음 날 일거리가 없어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버릇이 있답니다.
얼마 전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다시 잠자리에 들기가 뭐해서 TV를 보고 책을 읽다가 결국에는 출출해서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식은 밥, 깻잎, 무 말랭이를 꺼내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코 끝이 찡해졌습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30대에 저는 젊음을 방황으로 소진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몇 개월 만에 집에 들렀지요. 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난 불효 자식을 멍하게 바라보시더군요. 저는 아무 말없이 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밥상을 챙겨 오시더군요. "얘야, 밥 묵어라. 사먹는 밥이 어디 입에 맞겄냐." 그때의 미지근한 밥, 시큼한 깻잎, 시원한 동치미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허겁지겁 밥을 입에 넘기던 불효 자식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당신의 눈길이 지금도 느껴집니다.
한번은 제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연락하지 않았는데 몹시 놀란 표정으로 병원에 오셨더군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당신이 도시의 병원을 찾기 위해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 물어 병원에 왔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당신의 흙 묻은 구두, 구겨진 와이셔츠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자식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던 당신은 10년 전 너무도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불쑥 집에 들어섰을 때처럼, 자식들에게 불편을 끼치기 싫어서 그러셨나요.
그런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kcar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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