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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정도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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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정도언 교수

입력
2004.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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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 삶을 지배한다고 느끼는 때가 있는가. 약속을 까맣게 잊은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애초부터 가고 싶지 않았음을 알아차렸을 때 그럴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정신분석학 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 '영화 속 장면'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하지만 정신분석은 분명히 고도의 전문가에 의해 이뤄지는 과학이다. 3월말 국내 최초로 국제정신분석학회 정회원 자격을 인정받은 서울대병원 정도언(53·신경정신과) 교수를 만나 영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정신분석학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봤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사람들이 갑자기 문을 여는 바람에 멀뚱멀뚱 쳐다보며 어쩔까 고민했던 꿈을 꾼 적이 있는데요…." 일반적 분석사례보다는 기자의 체험을 케이스로 삼는 것이 더욱 사실적일 것 같아서 얼마전 꾼 꿈 이야기를 꺼냈다.

정 교수는 "분석중이 아니어서 인상적인 소견만 말하겠다"고 전제한 뒤 놀랍게도 '배변'으로 상징되는 자기표현과 인사와 관련된 좌절을 겪고 결정 못하고 어려워하는 상황이며 남성과의 경쟁관계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요지로 꿈을 해석했다.

기자는 "나의 의식도 알아채지 못하는 무의식을 분석한다니, 이것이 정말 의학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정신분석이란 소설쓰기가 아닙니다. 피분석자가 생성하는 자료로 가설을 세운 후 이를 검증해 무의식적 의미를 알아내고, 이를 치료에 적용하는 매우 과학적인 작업입니다." 피분석자가 제공하는 자료란 꿈 외에 자유연상, 말실수 등이 포함되며, 2∼3년에 걸친 장기 면담으로 퍼즐을 맞추듯 무의식을 종합 분석한다.

국제정신분석학회로부터 정 교수가 자격을 인정받기까진 15년이 걸렸다. 1988년 미 캘리포니아대 의대에 건너가, 먼저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저항 방어 등 피분석자의 반응을 알기 위해 주 4회 45∼60분씩 2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았다. 문헌강독, 지도감독 아래의 환자 분석도 했다. 하지만 2년으로 끝나지 않아 그 뒤 10여년간 틈틈이 보충을 했고, 드디어 올 3월 서류심사와 구두시험을 거쳐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 "영화에서 정신분석가와 여자 환자는 왜 늘 사랑에 빠지나"같은 질문은 안 하기로 했다. 하지만 힌트는 얻었다. 정신분석치료에도 부작용이 있는데 피분석자가 정신분석가를 과거 인물과 혼동하는 '전이', 정신분석가가 피분석자에게 과거인물에 대한 느낌을 옮겨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역전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양성된 정신분석가가 더욱 중요하다. 정 교수는 "정신분석가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인간을 돕고자 하는 선의일 것"이라며 "하지만 그 선의조차 객관적이고 냉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시간이 걸리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정신분석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 정신과의사는 "약으로 급한 불부터 꺼야지, 상처를 후벼내면서 정신분석을 하고 있으랴"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정신분석이란 갈등의 뿌리를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일생을 좌우하는 기본적인 '판뜨기'가 어린 시절 몇 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은 과거의 상처를 없앨 수는 없으나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망가뜨리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특히 부모와의 관계)이 투영돼 현재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를 적시한다면 인생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죠."

정신분석은 대인관계, 적응, 부부·부모자식 간 갈등, 신체증상의 문제가 있고 장기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으며 치료를 견딜 자아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효하다. 우울증, 정신분열병 환자에게도 도움은 되지만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이다.

"정신분석이란 환자뿐 아니라 정상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상인과 환자의 차이는 병원에 오느냐, 안 오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신분석이 트렌드처럼 널리 퍼진다면 우리 사회는 좀 달라질 겁니다. 요즘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라는 식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갈등은 파괴적 에너지를 가집니다. 이 때 질주를 멈추고 생각할 단추를 제공하는 것이 '갈등의 심리학'인 정신분석입니다."

화제는 사회적 갈등 즉 탄핵정국과 노무현 대통령으로 옮겨졌다. 정 교수는 우선 "예컨대 혁명가처럼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유형이 있는데, 노 대통령도 이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갈등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겐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것이 지지율의 기반이다. 정 교수는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탄핵은 오히려 자기확신을 키워줄 뿐이다. 집권 초 야당과 언론이 그를 격려하고 지지했다면 상황이 좀 나을(사회 갈등과 반목이 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비주류라는 인식이 깊어 잘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럼 정치인들이 정신분석을 받는다면, 우리 정계와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숙할까? "불가능합니다. 정신분석이란 자신에게 정직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길 원하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습니다. 은퇴한 뒤 늘그막에는 모를까, 거짓말에 익숙한 정치인은 정신분석이 안 됩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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