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람이 불고 있었다. 17대 총선에선 사라질 것 처럼 보였던 '지역 바람'이다. 봄바람은 북상중이지만 이 바람은 TK지역에서 거꾸로 PK에 슬며시 남하해 지역 표심을 흔들어놓고 있다. YS바람이나 반DJ 정서와는 양태가 다르다. 하지만 "다른 곳은 전부 열린우리당인데, 영남에서라도 한나라당을 뽑아 줘야 안되겠나"며 바닥을 꿈틀대고 있다. 그 파장이 심상치 않다.9일 부산역에서 만난 회사원 한종희(42)씨는 "최근 들어 '그래도 한나라당'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39)씨의 말은 솔직했다. "호남은 민주당 대신 우리당을 전략적으로 미는데 영남은 한나라당 보루를 구축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탄핵역풍은 많이 희석돼 있었다. 부산 연산동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강모(55)씨는 "나라가 어지러워질까 봐 대통령을 쫓아내는 것은 반대했지만 그래도 부산은 원래 한나라당"이라고 했다.
그러나 젊은 표심은 이런 분위기와는 약간 궤를 달리했다. 동아대생 장세호(25)씨는 "총선 결과 또다시 전국의 반쪽을 파랗게, 다른 쪽은 노랗게 물들일 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결국 PK 판세는 '롤러코스터' 를 타고 있었다. 최근 한나라당과 우리당 부산 선대위측이 내놓는 판세 분석은 공히 한나라당의 상승, 우리당 하락이다. 그런데 그 정도가 예상보다 심각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중·동구만 겨우 우세로 꼽던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18개 선거구 가운데 2∼3개를 빼곤 싹쓸이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우리당은 사하을만 우세이고 영도, 북강서갑, 동래 등은 백중 우세지만 뒤집힐 수 있다며 초상집이다. 우리당 관계자는 "대다수 선거구에서 2배 이상 앞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박풍(朴風) 노풍(老風) 때문만이라고만 보기는 힘들었다. 지역주의를 눌러놓고 있던 탄핵 역풍이 걷히는 게 근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한나라당측은 '지역 바람'을 애써 부인한다. 역풍을 우려해서다. "시민들이 평상심을 되찾고 인물론이 먹혔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PK 다수석 확보에 전국 정당화의 상징적 의미를 두고 있는 우리당은 바짝 긴장해있다. "정동영 의장이 상주하다시피하며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라고 시당 관계자는 푸념했다. 한나라당측이 뒤켠에선 조직적으로 바람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심도 한다. "아무리 PK라지만 차떼기와 탄핵에 대한 반감이 아직 상당하다"며 기대의 끈도 놓지 않았다. 바람의 강도가 어디까지 갈지는 이번 주말과 휴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풍이 될 경우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산=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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