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세가 혼미한 가운데 발생한 한국인 집단억류 사건은 이라크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게 했다. 다행히 억류된 7명이 이내 풀려나, 인질구출과 파병계획이 얽혀 난감하게 되는 상황은 모면했다. 그러나 여야 정당이 당장 파병을 총선 쟁점으로 삼듯이, 이라크 문제를 근본부터 다시 논의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억류사건만 보면, 아무리 선교를 위해 고난을 무릅쓴다지만 전투가 치열한 지역으로 무턱대고 들어간 무모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의 안위도 문제지만, 자칫 일본인 인질처럼 철군요구에 이용돼 국가적 어려움을 초래할 행동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파병에 얽매여 이라크 정세악화를 과소평가하는 잘못은 뚜렷하다. 시아파 봉기에 미국과 세계가 충격을 나타내는데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며 파병방침부터 재확인했다. 이어 억류사건도 저절로 해결된 데 안도할 뿐, 이라크 정세 전반과 파병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은 아니다. 이래서는 급변하는 사태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다.
여야 정당도 총선 영향만 따질 게 아니라, 파병의 타당성을 진지하게 다시 논의하는 것이 국민대표의 도리다. 파병동의안 의결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전쟁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점령통치의 정당성은 부정되고 있다. 민중봉기에 따라 평화재건이란 파병 명분은 더욱 모호해진 반면, 파병에 따를 위험은 크게 높아졌다.
이런 마당에 막연한 국익과 국제 약속을 내세워 파병을 무작정 고집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파병은 중대한 주권적 선택이고, 분명한 대의명분과 정세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이 선택의 권한과 책임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시민단체도 파병찬성 국회의원을 낙선 대상으로 지목하기에 앞서,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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