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관련해 내 기억 속에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서로 엇비껴 지나가는 세 젊은이가 있다. 둘은 한 팀이고 하나는 또 다른 모습인데, 이태 전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그때에도 광화문에 연일 촛불시위가 있었다. 동네에 내가 얼굴을 잘 아는 대학생 자매는 경기 일산에서 여러 번 광화문에도 나갔다 오고 일산 미관광장에도 나갔다 오곤 했다. 그런 날이면 모자 달린 털외투에 목도리까지 둘둘 감고 두꺼운 벙어리장갑으로 중무장을 했어도 그들의 얼굴은 혹독한 추위에 바짝 얼어 있었다. 그래도 그들한테는 '현장'과 '참여'의 자부심이 넘쳐 났다. 나는 그들의 젊은 열정을 부러워 하고 또 칭찬했다.
그들의 반대쪽에 있던 젊은이는 그때 서울에 올라와 공부를 하고 있던 내 조카 녀석이었다. 가끔 전화를 해 선거 때 내려갈 거냐고 물어도 이 녀석은 대답 한번 시원하게 하는 적이 없었다. 촛불시위하는데 가봤느냐고 물으면 "친구들은 갔는데 저는 추워서 안 갔어요"라고 대답했고, 다시 선거 때는 내려갈 거냐고 물으면 "그때 봐서 강릉 갈 일이 있으면요"라고 대답하던 아이였다.
나는 촛불자매는 당연히 선거를 하고, 내 조카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 촛불자매는 그 전날 대관령 스키장으로 떠났다가(공짜로 생긴 아깝고도 비싼 숙식권과 입장권을 썩일 수가 없어서, 또 '잘만 하면' 다음날 투표 마감 전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다음날 저녁 때 돌아와 개표방송만 보았고, 그때 스물 세 살이던 조카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인 자기 아버지에게 불려 내려가 자신의 첫 투표권을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가 찍으라고 말한 후보에게 헌납하고 돌아왔다.
나는 두 경우 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강의실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니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또 스키장의 일 같은 그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겨울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가는 일보다 잠시 투표장으로 나가는 일이 마음에 더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광장에 나가는 일은 그것 자체로 재미도 있고 익명성도 보장되지만, 투표장에 가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을 뿐더러 내가 누구인지 그 자리에서 신분증을 까 보여야 하는 일인 것이다. 어느 쪽을 지지하고 아니고를 떠나 절차적으로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주 일부의 이유일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을 모르며, 그들이 하는 일과 내 일이 크게 상관이 있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의 일 같은 선거에 대해 시험을 보듯 여러 후보 중 어느 한 후보를 마음속으로 골라내는 일까지는 여타 감정이나 학연 지연에 휩싸이지 않고 잘 뽑아낼 수 있지만 그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일부러 투표장까지 가는 건, 또 거기 가서 이런저런 절차를 거치는 건 생리적으로 싫다는 것이다.
생래적 무관심층이야 어떤 이슈에도 마찬가지겠지만, 투표 연령층 가운데 가장 젊은 학생들이 보기에 이번 선거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심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판단 역시 '투표 참가, 혹은 불참' 이전의 일이라 그런 의견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실제 투표로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선거 이슈가 확실한 만큼 예전의 총선 때보다 투표율이 조금 더 더 높지 않을까 예측한다지만 이것 역시 나중에 통계가 나와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른들은 여러 후보 선택 변수 속에 '인물'을 중요 요소로 여기지만 젊은이들은 어느 인물이든 어차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라는 점과 또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이슈인 탄핵에 대한 찬반 심판을 들어 '인물'보다는 '정당'으로 후보를 선택하는 거 같다. 자기 지역구의 후보자를 물었을 때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선거를 한다면 어느 당의 후보를 찍겠다, 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는 다들 어느 정도 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일로 내가 만난 수도권 지역의 젊은이들은 그랬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들의 생각 그대로 '만약 선거를 한다면' 하는 조건부 선택일 뿐이어서 이들의 정당 우선 선택 역시 실제 투표에선 얼마큼 반영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 선거에 젊은이들의 표심이 대략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방향은 보이는데 그것이 실제 얼마큼의 표로 위력을 발휘할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잠자는 표는 처음부터 없는 표나 마찬가지다. 이제 이 땅의 젊은 심판관들이 표로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