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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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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편히 쉬세요"

입력
200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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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세요.며칠 전 당신의 묘와 아버지 묘를 합장했습니다. 손자, 손녀까지 모두 나서서 이장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의 권유로 동네 공원에 들렀습니다. 공원 여기저기에서 자목련, 작약, 앵두나무, 감나무가 서서히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니 당신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당신은 집 안마당 자투리 땅에 호박이나 채소를 심어 애지중지 가꾸셨지요. 만물은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데 인간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중간에 뜻밖에 어머니의 경로당 친구라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자네 어머니, 참 부지런하고 마음씨 좋은 양반이었지.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어디 나갔다 오면 화장지를 구해다가 놓고 가곤 했지." 살아 생전 모습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더욱 아려왔습니다.

어머니는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13세에 종가 맏며느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소작일을 했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를 모셔야 했습니다. 계란 몇 줄과 쌀가마니를 지고 십리길을 걸어서 순창 오일장에 가 생필품과 바꿔 오시곤 했지요. 그 때 아버지는 일제에 징용으로 끌려가 후쿠오카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과부 아닌 과부가 돼 위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래로는 저 하나만을 바라보고 지내야 했습니다. 열여덟에 저를 낳고 이어서 딸을 보셨지만 여동생은 세 살 때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외아들로 귀여움을 받고 자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한테 "머리에 짐을 너무 많이 이고 살다 보니 키가 오그라들었다"며 안쓰러워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 돌아오기만을 믿고 억척스럽게 사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침내 3년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살림살이는 나아진 것이 없었지만 한 가족이 오순도순 지내는 행복감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는 어른이 되면 효도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효도를 못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여든다섯에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많이 편찮으셨지요. 그런데 저 역시 아프다 보니 제대로 간호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이제 아버님 곁에 나란히 눕게 되니 기분이 한결 좋으시지요? 이제 모든 것 잊고 고이 잠드시기를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배병우·전북 전주시 효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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