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39)씨는 8일 집을 나서며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집 앞 아파트 벽에 나붙은 17대 총선 출마자들의 선전벽보가 이틀째 절반이 땅에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전벽보가 붙어 있는 인근 아파트 벽은 인도와의 사이에 1m 높이의 화단이 끼어 있어 주민들이 벽보의 글씨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다.이처럼 벽보의 가치가 떨어져 버리고 효용성도 줄어들자 오랫동안 선거의 상징이 돼왔던 선전 벽보의 폐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 세대별로 받아보는 선거공보도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선전벽보의 경우 전국 10만1,860곳에 나붙는 수십만장을 일일이 관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 벽보가 게시된 지 4일밖에 안됐지만 "정치인이 싫다" "왜 남의 벽에 허락도 없이 갖다 붙이느냐"는 등의 이유로 찢기고 떼어진 선전벽보가 이미 부지기수다.
선전벽보 무용론도 만만치 않다. TV 토론, 인터넷 등 미디어 선거 시대에 종이(가로 38㎝, 세로 53㎝)위 사진과 글귀를 보고 후보를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얘기다. 이런 벽보에 매번 10억여원의 비용과 많은 관리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물론 미디어선거에 낯선 노년층은 "벽보마저 없으면 얼굴도 모른 채 후보를 골라야 한다"고 불만을 나타낸다. 하지만 표를 쫓는 후보들 마저 "선전벽보에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한 서울지역 신인 후보)고 말한다.
선거일 8일전에 각 세대로 보내는 선거공보도 3일 뒤에 각 후보의 책자형 소형인쇄물이 발송되기 때문에 중복된다. 소형인쇄물을 앞당겨 발송하면 선거공보 제작비 43억여원을 절감할 수 있다.
선관위는 "후보를 알릴 기회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번 선거부터 도입된 예비후보등록제를 활용하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올해는 선거법개정이 늦어져 지난달 12일에 등록이 이뤄졌지만 선거법상 선거일 120일전부터 예비후보등록이 가능하다.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선거사무소를 차려 여러 수단을 동원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이제 종이선전물 등 아날로그시대의 선거 물품들은 서서히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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