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放棄)라는 말은 내버려 둔다는 말이다. 주로 안 좋게 쓰이는데 나는 이 말을 억지로 옹호해 볼 작정이다. 총각 때 도(道) 닦으러 계룡산에 들어갔다. 4박5일 동안만 용을 쓰면 얼추 도의 언저리까지는 맛을 볼 성 싶었다. 안 그래도 몇 년 전 노상에서 '도를 아냐' 묻는 처자를 따라 쫄쫄 쫓아도 갔더랬다. 대자연에 묻혀 지겨운 핸드폰도 꺼놓고 자연식에 소금물 먹고 숙변도 없애고 날아갈 듯한 '필'로 명상, 참선, 기공 뭐 그런 걸 했다.그 중에 금언수행이 있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도를 닦으려는고? 흠... 마음이 번잡하야 평화를 얻어볼 량으로다...쩝... 허면 줄창 고것만 생각하렷다! 끄응… 그러라니 그랬다. 그 때 알았다.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지. 묵언하고 가시옷 열 한 벌을 짜야 마법이 풀린다는 백조왕자 이야기가 그래서 재밌군.
다시 도(道)로 가자. 그런데 문제는 자꾸 딴 생각이 도는 거다. 내공이 협량하야 별 잡생각이 다 난다. 작가 관두고 도로 가? 도로 가지 말고 그냥 작가(잘까)? 허튼 공상이 꼬리를 물고 변소 불은 껐는지, 밥통에 밥은 있는지, 밥은 없는데 플러그는 그대론지.. 거 참. 화두인지 화투인지 붙든 패는 생각 없고 딴전만 부산하다. 모양새는 잡아서 개울가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등뼈 세우고 코로 숨쉬고 입으로 뱉기를 꽤 했지만, 화두가 뭐였드라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다. 제기랄 도의 길은 험난도 하군. 에라∼ 저린 다리 풀고 코에 침이나 바르지 하던 그 찰라, 유레카! 저절로 두어라, 절로 얻으리. 개울가 옆 밤나무를 보고 끝내 깨달음을 얻고 말았다.
풋밤을 보라. 가을이면 철갑을 벗고 그 얼마나 섹시하게 속살을 드러내는가? 파멜라의 엉덩이는 절로 가라다. 절로 두면 밤이 되지 않던가? 쌩퉁을 까보자. 그 밤이 까지기나 하는가? 또 까봤댔자 그게 밤 축에나 끼던가? 억지 춘향이식 비약을 해보면 세상만사 분란이 저대로 놔두지 않아 생겼는지 또 모를 일이다. 좀 기다려도 보자. 반기(叛起)말고 방귀깨나 뀌는 군하고 방기도 해 보자.
그러다 보면 자정작용도 일어나고 자체 백혈구도 생긴다. 또 믿음에 여유조차 생겨나서 분위기 장난 아니다. 비틀즈를 보라. 'Let It Be'로 세상을 얼마나 멋지게 만들었는가?
/고선웅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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