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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13> 내 인생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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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13> 내 인생의 스승

입력
200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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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0대 후반부터 영향을 받은 분이 함석헌(咸錫憲) 선생과 그의 스승 류영모(柳永模) 선생이다.1955년 가을이었다. 청소년적십자를 이끌다 보니 내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장준하(張俊河) 선배에게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감화를 줄 큰 스승이 없느냐고 상의했더니 함 선생을 소개해주었다.

아현동 자택으로 함 선생을 찾아 뵈었다. 한복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 계신데, 수염과 머리가 온통 하얀 모습이 마치 인도의 성자나 예언자 같았다. 찾아온 뜻을 밝히고 좋은 말씀을 해 달라고 청했더니 하나님은 역사 속에 살아계시니 그 뜻을 역사의 명령으로 알고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역사의 명령'이라는 글을 써 주셔서 청소년적십자 잡지에 실었다.

1개월 뒤 청소년적십자 간부 학생들을 모아놓고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두 번째 강연에서 함 선생은 "오늘 강의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중요한 말을 하겠다고 했다. 선생은 앞으로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협력과 보호를 잘 받아야 한다면서 53년 6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지시로 약 3만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은 국제적십자가 만든 제네바조약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쟁 포로는 잘 보호했다가 전쟁이 끝나면 각자 원하는 나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제네바조약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적십자인으로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2, 3일 지나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대한적십자사 내에는 이 대통령을 유별나게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청소년 부장 서영훈이 어째 함석헌 같은 사람을 데려다가 대통령의 용단을 비판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이었다. 나는 "함 선생이 그런 말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놀랬다"고 해명했고, 사태는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았다.

그 후 내가 불안을 느껴 함 선생에게 가지 않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 시집 '수평선 너머'와 '사상계'에 쓴 글들을 읽고 '참으로 올바른 사관을 가진 사람이구나.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요, 용감한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후 함 선생을 여러 번 찾아가 개인적으로 말씀을 듣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사모님에게 "선생님 뵈러 왔습니다"하니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강의 들으러 갔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아니 함 선생님에게도 선생님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사모님께서는 "류영모 선생님을 모르세요. 함 선생의 선생이 류 선생이세요. 그 분이 매주 금요일 종로 YMCA에서 사경회(査經會)를 갖는데 거기에 가셨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길로 YMCA로 찾아갔다. 단상에는 키가 다섯 자 정도 됐을까, 옛날 그림에 나오는 노자 같은 분이 서서 말씀을 하고 계셨다. 모인 사람은 10명쯤 되는데 맨 뒤에 머리가 하얀 함 선생이 꼿꼿이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나도 한쪽 구석에 앉아 강연을 들었는데, '참 철인(哲人)이로구나' '진인(眞人)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쯤 다니다 보니 함 선생의 사상은 류 선생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 풀어내는 것임을 알게 됐다. 씨알사상이 그랬다. 함 선생은 그 즈음에 '사상계'를 통해 이 대통령을 맹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차츰 함 선생에게 덜 가게 되고, 대신 구기동의 류 선생 자택을 자주 찾게 됐다.

63년부터는 내가 살고 있던 남산의 한적 사택에서 류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3시간씩 3년 동안 했다. 이화여대 교수 김흥호(金興浩) 선생도 몇 번 왔고, 이병호(李炳鎬) 서울대 교수, 황종건(黃宗建) 명지대 교수, 김신일(金信一) 서울대 교수 등도 자주 왔다. 청소년적십자 학생들로는 이종우, 곽일훈, 정태기, 박유광, 곽영훈, 김학규, 김양자, 조영자 남매 등 10여명이 열심히 들었다. 처음에는 성경말씀도 하셨지만 '중용'과 '노자'를 강의하시면서 성경 말씀을 곁들이고 인도사상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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