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에 나무 한 그루 심으셨나요? 작년 식목일이 지나고도 똑 같은 것을 여쭈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한 식목일이었어요. 가만 있어도 절로 봄의 기운이, 생명의 도약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봄날.광릉 숲에서는 식목일이 오기 한참 전부터 나무 심을 준비를 했습니다. 숲 혹은 산림과 관계되는 사람들은 식목일이면 아주 바빠집니다. 다른 분들이 가능하면 많이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광릉의 숲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나무를 심으셨답니다. 그리고는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왜 심을까요? 산소공급을 비롯해 나무가 주는 물질적인 또는 공익적인 기능이야 초등학생들도 몇 가지 정도는 나열할 만큼 잘 아는 일이지요.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좋은 이야기도 있고요. 그렇다면 그 나무 아래 피어난 작은 풀 한 포기 마저 우리가 보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식물은 왜 소중한가?'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 왜 사느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식물 종 하나하나가 다 하나의 생명체이고 우리가 이를 소중히 하는 것은 당연하며 지구상에 한 종을 멸절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도덕적인 문제에 호소할 수도 있지만 지구촌 한쪽에 여전히 굶주리는 어린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 이유가 어쩐지 궁색한 것도 사실입니다.
'생물다양성협약'이니,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거래 방지에 관한 협약'이니 하는 국제적인 협약들이 나라마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소리 높여 이야기 하는 기본 배경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보전'에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은 발전하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던 나무가 혹은 풀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변신하는 예가 속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필요할 때 이용하도록(설사 아직 그 쓰임을 몰라도) 현재대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목이나 은행나무에서 항암제나 혈액순환 촉진제가 만들어질 줄은 이 나무들과 함께 살았던 그 옛날의 공룡들은 물론이고 현대인인 우리도 몰랐으니까요.
한 때 미국이 북한산에서 가져간 털개회나무(라일락집안의 한 나무) 씨앗 몇 알로 '미스김 라일락'을 만들어 전 세계 꽃나무시장을 석권하였으며 그 나무가 올린 부(富)와 가치는 우리와 무관하다는 이야기로 억울해 했던 기억을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식물자원의 유출입 관리도 신경을 쓰고, 자생식물관련 연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이 마당에 가장 걱정 되는 것은 무대책한 국수주의입니다. 하나를 막았지만 백을 얻을 기회를 저버리지는 않았는지. 진짜 중요한 것은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것 지키느라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닌지.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는 일은 새는 문에 빗장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연구하고, 개발하고, 근본적으로 보전하여 진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 부족한 편지가 벌써 100회가 되었습니다. 해서 이번 편지가 너무 거창해졌나 봅니다. 몇 달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던 편지를 이리 오래도록 쓰고 있는 것은 부족한 글을 자연에 대한 애정으로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유미/국립수목원 연구원 ymi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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