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하야카와라는 일본계 미국인 언어학자는 '생각과 행동 속의 언어'라는 책에서 언어의 함축 의미를 따져보며 으르렁말(snarl words)과 가르랑말(purr words)을 대립시켰다. 그가 든 예를 옮기자면, "이런 버러지 같은 놈!"(You filthy scum!)은 으르렁말이고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여자야"(You're the sweetest girl in all the world)는 가르랑말이다. 앞의 말은 남을 위협하거나 모욕하는 으르렁거림이고, 뒤의 말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 남의 호감을 사려는 언어 행위다.으르렁말이나 가르랑말에서는 언어의 소통 기능 가운데 중립적 정보 기능이 거의 사라지고, 그 대신 표현적 기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런 말들에 담긴 의미는 개념보다 정서에 가깝다. 으르렁말의 극단적 형태는 욕설이나 저주다. 반면에 연인들 사이의 밀어(蜜語)나 독재자 이름 앞에 흔히 붙는 갖가지 존칭 수식사들은 가르랑말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여러 단계의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이 있다. 어떤 말들은 그 함축하는 바가 긍정적·우호적인 데 비해, 다른 말들은 그 함축 의미가 부정적·적대적이다. 빙인(氷人)이 맡은 역할은 점잖지만 뚜쟁이가 하는 짓은 천하다. 화백은 환쟁이보다 더 존중 받고, 밀정이나 간첩은 정보 요원보다 더 경멸 받는다. 방금 비교해본 말들의 개념은 거의 같지만, 거기 함축된 감정은 사뭇 다르다. 말 속에 담긴 함축 의미가 클수록, 그 말은 으르렁말이나 가르랑말에 가까워진다.
어떤 말들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경험과 신념에 따라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을 겸하기도 한다. 민족주의자라는 말은 한국인들에게는 대체로 가르랑말이지만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으르렁말에 가깝다.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좌파, 우파, 반미주의자 같은 정치언어도 이 말들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념 체계에 따라 가르랑말이 되기도 하고 으르렁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을 겸하는 표현들의 리스트에 최근 추가된 것이 '노빠'다.
알다시피 노빠는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 지지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빠의 개념적 의미일 뿐이다. 노빠라는 말에는 이 개념적 의미를 압도하는 함축 의미가 담겨 있다. 노빠는 당초 으르렁말로 태어났다. 으르렁말로서 노빠가 지닌 함축 의미는 멜로드라마적 감정 과잉, 이미지 추종, 자기 도취, 부화뇌동, 독선과 아집, 광신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 지지자들 일부가 이 말을 기꺼이 자칭어(自稱語)로 수용하면서 노빠는 이내 가르랑말을 겸하게 되었다. 노빠가 가르랑말로서 지닌 함축 의미는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민주주의, 개혁적 자유주의, 탈지역주의, 민족 자존, 인권 옹호, 평화 애호 같은 가치들이다.
2002년 겨울, 노빠들은 대통령 선거를 아슬아슬한 승리로 이끌며 대한민국의 행정 권력이 파시스트의 상속자들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냈다. 그리고 2004년 봄 수구·복고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국회가 법의 허울을 쓰고 권력 찬탈을 꾀하자, 노빠들은 다시 이 반동적 음모의 실현을 막아내기 위한 시민적 연대의 고갱이가 되었다. 그 점에서 노빠들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수호자다.
그러나 노빠들은 한 해 남짓의 노무현 정부에 대해 이제 한 번 곰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간 참여 정부의 실천은 가르랑말로서 노빠가 지닌 함축 의미의 살을 상당 부분 발라내 버렸다. 이 정부는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에도, 인권 옹호에도, 민족 자존에도, 세계 평화에도 무심했다. 만약 노빠들이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한다면, 또는 이 모든 것을 적대적 언론이나 야당 탓으로 돌린 채 '노기도문(盧祈禱文)'만을 외어댄다면, 노빠는 이내 사나운 으르렁말로만 남게 될 것이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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