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팔루자에서 지난달 31일 저항세력의 매복공격으로 숨진 미국인 4명이 '블랙워터 USA'라는 용병회사 직원들로 밝혀지면서 이라크에서 활동중인 용병의 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안업체'로 불리는 용병회사들은 현대적 기업형태를 갖추고 민간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각종 경호·경비 업무에 투입되거나 병력파견에 한계를 가진 미군의 작전임무를 대신하기까지 한다. 팔루자에서 희생된 용병들은 시체가 참혹하게 훼손된 채 티그리스강 철교에 매달려 있던 장면으로 충격을 줬지만 용병들의 사망은 처음이 아니다. 4일 캐나다 일간 토론토 스타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에도 영국 보안업체 '올리버 시큐어리티' 소속 요원 2명이 북부 모술에서 피격 당해 숨졌다. 요원들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용병회사들은 이라크에서 노다지를 캐면서 탈냉전 후 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미 최대 동맹국은 보안업체
군사전문 사이트인 글로벌 시큐어리티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중인 보안업체는 18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이 파견한 요원은 1만5,000명을 넘는다. 토론토 스타지는 "영국의 이라크 파병 규모가 약 9,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라크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세력은 보안업체"라고 말했다.
보안업체들은 미국의 정규 특수부대원을 능가하는 요원들의 전투력과 장비, 노하우를 바탕으로 군사부문과 민간부문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요원들중 상당수는 실제로 특수부대 출신 등 다양한 군경력자들로 충원된다.
용병회사들의 최대 고객은 미 국방부로 알려져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취임과 함께 국방부 내의 부족한 인적·지적 자원을 민간부문에서 조달하는 아웃소싱 정책을 추진해 왔다. 더욱이 정규군의 손실을 우려하는 미 국방부는 보안업체들에게 위험지역의 보안업무는 물론 일부 민감한 군사작전과 보급 임무까지 맡기고 있다. 용병들은 정규군과 공동작전을 벌이며 첨단무기를 다루기도 한다.
미 시사주간 타임 최근호(4월 12일자)는 이라크에서 미 국방부로부터 전투지역의 보안업무를 도급받아 활동중인 보안업체가 20여 개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계약액만 수백만 달러를 넘는다.
민간 의뢰인들과 계약하는 것도 보안업체들에게는 짭짤한 수익이다. 이들은 치안부재 상태의 이라크에서 외국 기업인이나 정부관리, 기자들의 경호와 보안 컨설팅 업무를 맡는다. 미국이 임명한 민정 책임자인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도 보안업체 요원들의 경호를 받는 상황이다.
토론토 스타지는 용병들은 업무 중 죽거나 부상해도 미국측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임무와 작전형태는 연합군 정규군과 구별이 잘 되지 않아 저항세력의 공격 표적이 된다. 생명을 건 업무를 통해 요원들이 받는 돈은 블랙워터의 경우 한달에 최고 1만5,000달러(1,800만원) 정도. 블랙워터는 의뢰인에게 계약금으로 요원 1인당 하루 1,500∼2,000달러를 요구한다.
군사력도 아웃소싱 추세
보안업체는 이라크에서 치안유지와 민간업체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요소가 됐다. 보안업체들은 용병이란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 "우리는 미군의 역할 공백을 메워 이라크의 안정과 재건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안업체들은 냉전종식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규모 국지전과 내전이 전쟁의 주요 형태로 등장한데다 서방 각국이 이들 분쟁에 정규군 파병을 꺼리면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더욱이 서방 각국이 무기와 장비는 첨단화하면서 군사력은 감축, 전문기술을 가진 보안업체의 역할이 그만큼 커지게 됐다.
보안업체는 199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등장, 아프리카 각국의 내전에서 금광보호와 정부군 훈련 등을 맡으며 호황을 맞기도 했다. 현재 보안업체가 활동중인 국가는 세계적으로 50개 국이 넘는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터 싱어 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세계 보안업체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블랙워터의 경우 2002년 이후 미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금액만 3,500만 달러가 넘는다.
보안업체의 규모도 대형화했다. 영국 보안업체 '글로벌 리스크 스트래티지'는 이라크에 요원 1,200명을 파견하고 있다. 이라크에 요원 수천명을 파견한 미국 '커스터 배틀스'는 별도로 현지 이라크인 3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미국의 '스틸러 파운데이션'은 이라크에 500명 정도를 파견하고 있다.
보안업체들의 훈련장이 정규군 시설을 능가하기도 한다. 블랙워터는 미국 내에 면적 2,400만㎡을 넘는 자체 훈련장을 갖고 있다. 블랙워터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5만여 명의 요원을 훈련시켰다. 세계최고의 민간 군사 훈련장으로 통하는 이곳에서는 미 현역 특수부대원들이 훈련을 받기도 한다.
싱어 연구원은 "현대전은 병력 규모가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며 "세계의 국지적 불안이 계속되는 한 보안업체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국방 아웃소싱" 전문성·공공투자에 악영향 우려
민간업체가 국방의 일부분을 담당하게 된 것은 국방부와 민간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방부로서는 민간부문이 갖고 있는 효율성과 신속성을 기대할 수 있고, 민간업체는 정부가 독점하고 있던 방위·보안 분야의 막대한 시장을 수익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민간보안업체(PMC·Private Military Company)로 통칭되는 이 같은 기업이 생긴 것은 구 소련 붕괴 후이다. 탈냉전과 더불어 미국은 병력을 대폭 감축했지만, 이후 나타난 국지적 인종분쟁, 구호·재난 대처, 마약 및 테러 문제 등에는 미처 대응할 새로운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하고 경쟁력 있는 노동시장을 갖고 있는 민간부문은 국방부로서는 매력 있는 아웃소싱의 대상이었다.
현재 미국에만 최소 35개의 전문 PMC가 있는데, 1990년대 이들 업체가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수출한 국가는 42개국을 넘는다. 헝가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는 자국군을 현대화하는 데 PMC를 끌어들였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도 콜롬비아 아프리카 등지의 마약소탕 작전 등에 PMC를 이용했으며, 이는 미국의 개입전략(Engagement Strategy)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베트남전과 냉전시대 분쟁지역에서 정부가 수행하기 '더러운' 작전에 PMC가 동원돼 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전투를 수행하는 최일선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군인을 늘리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며 "아웃소싱이 해법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후 보안병력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에서 PMC의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다. 영국 민간업체들도 50∼60년대부터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 활발히 진출해 왔다.
그러나 민간부문이 정부의 특수임무인 국방에 간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도 거세다. 우선 국방부가 내세우는 비용절감이 논란거리 중 하나다. 반대론자들은 "아웃소싱이 특수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일 뿐"이라며 입찰에 참가한 업체들이 초기에 낮은 가격을 제시하다 후에 편법을 통해 보다 많은 이익을 챙기는 실례를 반증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웃소싱이 국방의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정부의 공공분야 투자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민간기업의 통제권과 이들이 외국에 파는 군사 프로그램을 어떻게 단속할지 근거가 분명치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국방의 근간이랄 수 있는 지휘계통에 혼선이 초래되고 사후 책임소재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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