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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전설/슬로… 슬로… 퀵퀵 전설의 춤꾼과 한번 추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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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전설/슬로… 슬로… 퀵퀵 전설의 춤꾼과 한번 추실까요

입력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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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로 치면 '바람의 전설'은 턱걸이 은메달이나 억울한 동메달감이다. 금메달감이 쏟아지는 게 요즘 우리영화계지만 이 메달이 금밭인 쇼트트랙이나 태권도가 아니라 육상에서 거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바람의 전설'은 우리 영화계가 밟아보지 못했던 춤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풍성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수확을 얻었다. '댄스댄스'등이 불발로 그친데 비하면 수확은 괜찮다.

"사교 댄스를 아십니까"라는 말은 "도를 아십니까" 만큼이나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갖는다. 사교댄스에 대해 말하는 자의 상당수는 '싸모님'들의 풍성한 지갑에 더 관심이 많은 '제비'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 '바람의 전설'은 그러나 사교 댄스를 삶의 의미로 알고 있는 자칭 예술가, 타칭 '제비의 전설' 혹은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다.

서장 사모님의 주머니를 턴 제비를 잡아 자백을 받아 오라는 명령을 받은 형사 연화(박솔미)는 교통사고 환자로 위장, 병원을 거처로 삼고 있는 박풍식(이성재)에게 접근한다.

그의 입을 통해 들려 오는 얘기는 대략 이렇다.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한낱 생식 대리점 직원이었던 저는 어느날 포장마차에서 '무도예술'을 한다는 친구 만수(김수로)를 만났습니다. 제비인 그 녀석 꼬임에 빠져 스텝을 밟는 순간, 저의 몸 속에선 바람이 불었죠. 만수의 제비 행각으로 사무실이 박살이 난 후 저는 진정한 예술가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고, 타고난 것인지 저는 몇 년 만에 '춤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그저 춤만 추어 주었을 뿐인데, 누님들은 나에게 자꾸만 '채워달라'고 합디다. 누님을 슬프게 하는 것은 무도예술인의 도리가 아니었기에 저는 최선을 다해 누님들을 채워 드렸고, 그 덕인지 인형 눈이나 붙이던 마누라는 골프채를 쥐게 됐습니다…"

만화적 구성은 특히 풍식이 춤의 달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서 빛난다. 해소를 앓던 노인이 'Hit The Road Jack'이 흘러나오자 감전된 듯 춤을 추어대는 것으로 시작, 룸바 퀵스텝 차차차 파도소블레 등 화려한 춤의 파노라마가 눈길을 잡는다. 삶에 지친 뻣뻣한 형사 연화가 어느새 풍식에게 전염된 듯 캐럴에 맞춰 횡단보도에서 스텝을 밟고, 풍식이 빠져 버리고만 순진녀 지연(문정희)과의 다채로운 춤의 향연도 춤 영화로서의 구성 요소로서 제 값을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 영화는 '바람(춤)'보다는 '전설'에 더 집중한다. 즉 풍식의 인생유전과 아이러니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춤 영화의 구도를 풍성하게 만들지만, 춤의 흥을 살려내는 데는 평균점을 밑돈다.

개인적 역량을 총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풍식의 춤 자체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더티 댄싱'에서 보여줬던 관능에 비해 뒷심이 달려 보이고, 배우의 동작을 보완해야 할 카메라 움직임은 밋밋하다. 안정된 연기로 충무로가 건진 새로운 수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박솔미에게 춤 연기를 시키면서도, 몸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곡선을 의상이나 카메라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몸으로 승부해야 할 영화가 '이야기'로 승부를 건 것은 패착이다. 더욱이 풍식이 회상하는 여성들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박정우표 시나리오'(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의 허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시도도 많지 않았고, 성과는 더 미미했던 춤 영화가 장르 영화로 한국에서도 승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바람의 전설'은 보여줄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의미 있는 메달을 땄다고 봐야 한다. 박정우씨의 감독 데뷔작. 15세 이상, 9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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